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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자유롭다는 것의 의미

토요일 롤다 회의를 하는데, 내가 얼마 전에 "액체근대"를 읽고 올렸던 글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꺼낸 롤다의 막내둥이는 내가 그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언니는 참 자유로워 보이는데, 언니의 그런 욕망이 외부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요지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자유로운가 아닌가"와 욕망이 외부에서 왔는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간단히 대꾸하고 넘어갔는데, 그 생각을 좀 더 풀어 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요지는, 조금 비약을 보태 말하자면, 온전히 "나"라고 할 수 있는 게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의 정체성, 나의 고유한 욕망,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자 많은 사람이(한때의 나 자신을 포함하여) 애를 쓰지만, "나"는 온전히 자율적이고 자생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액체근대"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한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고, 내가 거쳐온, 선택할 수 없었던 수많은 관계와 사건의 산물이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는 양친으로부터 가능했을 무수한 유전자 조합 중 우연한 하나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 진짜 내 것과 외부에서 온 것을 가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실은 "진짜 내 것"이라는 것은 애초에 아예 없다.(아니면 외부에서 온 모든 것이 다 내 것이거나)


자유롭다는 게 좋은 거라면, 나는 아직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사실 구태여 더 자유로워지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나는 자유로운 것이 "진짜 내 욕망"에 충실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애초에 "진짜 내 욕망"을 찾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며, 그런 게 있을 수도 없으니까.

어찌보면 자유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가장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도,

비워야 한다는 강박이 가장 나를 꽉 채워 숨쉬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유롭다는 것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며 독자적일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런 상태란 불가능하다.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빚은 그 일자가 아니고서야.)


내가 원하는 상태는 - 그걸 자유로운 것이라 부르건 아니건 -

내 안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되, 그 욕망이 나라는 개체를 해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는 것, 그리하여 하나의 욕망에 붙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은 욕망,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싶은 욕망은 한때는 내게 부끄러운 욕망이었고 나를 얽매는 족쇄인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욕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욕망에서 도망치려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상태가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상태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런 욕망이 어떻게 어느 정도로 발현되는가. 그런 욕망이 다른 욕망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다. 그리고 가장 건강하고 조화로운 상태로 욕망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나가는 것, 그리하여 그 조건 속에 나를 놓는 것이 늘 내가 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왜 나는 이 모양일까"라는 고민보다는

"내가 놓인 배치의 무엇을 바꾸면 내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될까"라는 고민이 언제나 더 생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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