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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지난 해 썸리스트 페이퍼에 기고했던 글. 하루 세 번 농담이 새해 결심이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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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minusone.somelist.com/1


직장생활 7년차가 되어서야 느닷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묻기 시작했을 때,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당도한 곳은 중학교 2학년때였다.(그렇다, 문제의 그 중2.) 나는 중2때까지만 해도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소녀였는데, 이르게 철이 든 탓에 작가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적 결론에 빠르게 도달해버렸고, 그 후로 직장인 7년차가 될 때까지 구태여 하고 싶은 일은 찾아서 뭣하겠느냐는 태도로 살아왔던 터였다. 


그러니 뒤늦게 덮쳐온 저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기어이 중2 시절의 욕망을 끄집어 낼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국 습작을 하고 합평을 하는 모임을 찾아 들어가 서너 달을 보냈다. 그 서너 달의 시간 덕에 깨달은 것이 있으니, 내가 원했던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고, ‘글’에는 ‘소설’ 말고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나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비-서사적인 인간이므로 하필 소설을 쓸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다시 6년쯤 흘러 2014년 올해 결국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데, 그 책은 간단히 말하자면 ‘일하기’에 대한 책이다. 오해는 마시길, ‘올해의 책’으로 내가 쓴 책을 내놓는 뻔뻔한 시도를 감행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소설가 되기를 포기했던 사람이 ‘일하기’에 대한 책을 세상에 내놓자마자 인터넷서점 대문페이지에서 <소설가의 일>이란 책을 보게 되었고, 순간 머리 속에 “두둥“ 소리가 들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소설가의 일”이란, 당연한 얘기겠지만, 소설쓰기이다. 그리고 저자 김연수는 이 책에서 소설쓰기라는 ‘일’을 한 결과로써 소설가가 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소설가가 될 법한 인간이 있는데, 그런 인간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쓰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게는 이 모든 이야기가 소설가라는 직업인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그 고민은, 모두에게 그렇듯, 결국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 나는, 이 시대에서 제정신 붙들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소설쓰기와 그리 다르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설가는 되지 못했지만, 내가 하려는 일이 소설쓰기와 그리 다를 게 무엇이냐는 느닷없는 합리화, 더 나아가, 이렇게 살다보면 소설도 결국 쓰게 될지 모를 일이라는 제멋대로의 상상과 함께.


“현대소설의 주인공이 온몸으로 끌어안아야만 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이 불안이다. … 나는 이 불안을 모두 떠안겠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오지 않는 것인지 한번 더 알아보겠다. 이게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을 희생하지 않는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50-51쪽)


어떤 1년보다 귀한 사람을 많이 잃었고, 세상은 바닥을 모르게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았던 2014년, 이 한 문단만으로도 이 책은 ‘올해의 책’으로 딱 어울리지 않을까. 그래서 이 문단을 읽자마자 나는 몇 년째 허무와 무기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절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를 끝맺는 책으로는 이게 딱이겠어.”라고.


(원고청탁을 받고 가장 먼저 택배로 받은 책이 마침 이 책이었던 것은 운명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내가 이 짧은 글에서 어울리지 않게 농담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 책 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 때문임을 밝혀둔다. 

“의식적으로 하루에 세 번 농담을 던지는 행동을 계속하면 뇌의 신경경로가 농담을 잘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재구조화된다.”(119쪽)

그래, 내친 김에 새해의 목표는 하루 세 번 농담이다. 농담이야말로 내리막 세상의 불안을 떠안는 최고의 방책이겠기에.)




소설가의 일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1-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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