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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대화

매실이님의 요 글(http://blog.igreenbee.net/antdream/7026960069)이 한참을 머릿속에 떠나지 않다가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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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란 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이해되어야 할 것은 이미 이해되었고, 이해되지 못할 것은 토론을 해도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질 들뢰즈

"대화 같은 것은 없었다. 대화는 사기다." - 자크 라캉


"그(라캉)에 따르면 '대화'라는 생각 속에 감추어져 있는 사기는 두 개인간의 진정한 교류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때때로 객관적인 정보의 교환이나 상호간의 사실 전달, 그리고 공통된 결론의 도달은 있을 수 있다. ... 하지만 이와 다른 모든 상황에서 대화는 오직 독백의 나열일 뿐이다." - 프랑수아즈 지루

 


내 삶에 대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내 미래의 계획에 대해 묻지들 않았으면 한다. 내 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원래 그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다. 원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이들, 원래 같은 지평에 서 있던 사람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영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한들 그것은 예의바른 제스춰이거나, 혹은 그들식의 해석 - 즉, 왜곡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는 표식일 밖에. 그들이 내가 있는 이 곳으로 건너 오는 일 따위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것은 말로써 온전히 전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로 전해 질 수 있는 것은 늘 실마리이거나, 끄트머리 한 자락이거나, 언뜻 스치는 편린일 뿐이다. 잘 되어봤자. 

그 작은 조각으로 전체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원래 그 그림을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대화란 늘 그런 것이다.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러니, 대화로 무언갈 소통하고, 그래서 존재하지 않던 공통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상상같은 것은 하지 말자. 대화는 늘 그렇게 타인을 거울로 삼는 행위일 뿐이다. 이해는, 소통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미 이루어져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대화를 통한 이해와 소통은 재확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물론 그리하여 모든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화에서 추구할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극이며 촉발이다. 언어의 조각이 나에게 날아와 내 안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것. 혹은 그에게. 그 그림은 화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자생적인 것일테지만, 그래도 무언갈 생성할 여지는 언제나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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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참 허망하지만, 그래도 결국 말할 수밖에 없다. 실마리거나 끄트머리 한 자락이거나 편린이라도, 그게 재수 좋으면 다 차이고 변화고 생성이니까. 뭐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거나, 노래를 부를 줄 안다거나, 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거나, 춤을 출 줄 안다면 다른 방법을 써보겠지만....

 

아니, 사실은....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 뿐인가, 공부도 그런 거 같다.

내가 대체 책을 왜 읽나, 공부를 왜 하나, 세미나는 왜 하나 생각하고 생각해보니...

뭐 거창한 논박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 뒤 남는 답은....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냥 재밌으니까.

 

어쩌면 언젠가는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이상 재미가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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