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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다시 한 번!

현재와 미래를 긍정하기 위해 과거를 긍정한다는 것, 그리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을 시도한다는 믿음은 요즘 횡행하는 자기계발식 "긍정적 마인드"와는 다르다.

과거 사건을 구성하는 원인들의 배치에 현재 발생하는 새로운 원인들이 참여함으로써 전혀 다른 새로운 사건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 . 그리고 이 새로운 배치 속에서 과거의 배치 속에 존재했던 원인들은 새로운 사건의 원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_131쪽


과거를 단 하나의 서사로 규정해 버리면, 그 안에 숨어 있는 다른 무수한 결은 비활성화된 채로 사장된다. 다시 말해, 과거는 정말 "과거"로, 더 이상 다른 차이를 생성해낼 수 없는 죽은 사건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은 새로운 사건과 접합할 때, 언제나 "현재" 혹은 "미래"로 되살아난다. 숨어 있던 결이 새로운 사건 안에서 펼쳐지면서 오늘의 삶에서 차이를 생성하며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과거는 전혀 새로운 사건이 된다.


과거의 경험 속에서 자신을 "피해자" 혹은 "약자"로 규정하는 서사를 뽑아내고, 그 서사 안에 자신을 가두면, 세상은 언제나 단 하나의 프레임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분노와 원한감정만을 동력 삼아 살아가기 십상이다. 그럴 때, 새로운 사건과 접합하여 과거를 현재나 미래로 펼쳐낼 가능성은 줄어든다. 


덮쳐오는 '필연'의 산같은 흙더미에 우연이 묻혀 버리는 것을 구제하는 긍정이다. 들뢰즈는 바로 이러한 긍정을 '이중긍정'이라고 표현한다. 이중긍정은 사건의 재실행이다. 이 재실행이란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남겨두고 다시 한 번 긍정을 통해 과거와 무관한 다른 사건을 실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그것은 사건의 재실행이 아니라 실행된 사건들의 산술적 합산에 불과할 것이다. 이와 달리 이중긍정(다시 한 번!)은 과거 속에 묻힌 우연을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차이를 되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_177쪽


물론 인간은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므로, 행운이 따른다면(그리고 우리에겐 늘 그 행운이 필요하다)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저자
진은영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7-09-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탈근대의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차이의 철학 새로운 삶을 촉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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