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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선

"협동조합이 청년노동을 구원할까"

롤링다이스에서 11월 5일 제2회 롤링펀나이트를 연다.


http://blog.rollingdice.co.kr/106


대차게 “협동조합이 청년노동을 구원할까”라는 주제를 내걸었지만, 저 말이 의문문인 만큼 아마 그 대답이 누구에게는 'yes'로, 누구에게는 'hell, no'일 수도 있겠다.


저번에도 얼핏 썼지만 나는 어떤 쪽인가하면, "뭐 구원까지야...." 정도랄까.

사실 나는 협동조합이 청년노동에게 직접적인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입장이다. 아주 특별한 예외가 아니고서야, 청년들은 비숙련노동자이며 대단한 노하우나 경험, 그밖에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금전적/사회적 자본도 없다. 그들에게 협동조합으로 창업해서 자신의 노동을 구제하라는 건, 어떻게 보면 참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협동조합이라는 기업의 형식이 사업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리스크를 줄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사업의 측면에서만 보자면(뭐 그런 게 현실적으로 분리해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협동조합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으면 오히려 리스크를 늘리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대답이 굳건히 "hell, no"였다면, 아마 이런 주제로 롤링펀나이트를 제안하자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협동조합이나 공유경제 등의 대안이 청년이 현실의 각박한 노동을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물적/인적 토대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덕에 협동조합이 "간접적으로" 청년의 노동에 지속가능성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청년은 직업이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라기보다는, 내 꿈을 실현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교육받으며 자라왔다. 일에서 가슴 뛰는 흥분을 느끼며, 직업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미치도록" "열정을 갖고" 일하는 것 - 아마도 그게 대부분의 머릿속에 있는 성공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에서 실제 그런 직업을 누리는 이는 드물고, 실제로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언지 알고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리고 운 좋아(아니 어쩌면 운 나쁘게도) 그걸 안다고 해도, 그 일에 모든 걸 걸어 넣는 일은 위험천만이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라는 거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가 공감할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이 규모 있는 기업의 정규직 일자리에 안착했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단 성공’이라고 읊조려야 하는 게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알리라. 그 일에서 가슴 뛰는 흥분을 느끼며, “미치도록” “열정을 갖고” 일하는 건 정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렇게 십수 년을 일하고 나면 자연스레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고 중산층의 안락한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란 희망조차 품기 쉽지 않다. 더구나 여기에 함정은 이런 한탄을 하는 자들조차 소수요, 많은 이에게는 그 ‘일단 성공’조차 요원한 꿈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늘 지금 이 현실에서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 아래 청년들이 벌이는 각종 활동이 참 미약하고 의미 없어 보일는지 모르겠다. 한때는 청년들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걸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무슨 저런 일들이 청년노동을 구원하겠는가. 그러려면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지. 그러려면 짱돌을 들어라!” 그러나 나는 다른 돈 되는 숱한 일이 있어도 롤다 일에 먼저 손이 가는 내 마음에서, 매일 한 시간 반씩 출퇴근을 하며 주말이면 널브러져 있다는 조합원이 짬을 내 롤다 일을 하면서 “투잡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내 멘탈헬쓰!”라고 남긴 트윗에서 이 일이 우리의 지친 노동을 끌고나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그렇게 비축한 힘이 다른 어떤 가능성을 불러올지 상상하면 가슴이 뛰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지금 아무리 작더라도 당장 우리의 현실을 달라지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별 관심이 없다.


아마 다른 많은 청년의 사회적 경제 활동이 그럴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토토협이 추구하는 청년 연대도 노동 자체를 구원하진 못할망정, 조합원이 노동을 이어나가는 힘을 주고 있지 않을까. 소셜 다이닝 집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실제로 롤다 일이 그저 동호회 활동쯤 아니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뭐, 그렇게 보인다면 나는 동호회 활동이라고 불리워도 별 불만은 없다. 무엇으로 명명 받느냐보다는, 이 활동이 실제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일으키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