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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선

롤링펀나이트를 마치고 - 몇 가지 생각의 기록

어제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몇 가지 생각.


1. 

협동조합이라는 자율적 경제조직은 자본주의의 일반적 기업처럼 그 궁극의 목표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 스스로 목표를 결정한다. 고로 조직원이 삶 속에서 변화를 겪는 존재인 만큼, 그 목표 역시 자연스레 달라질 수 있다.

어떤 활동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늠하는 것, 성과를 수량화하는 것은 당연히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에 맞춰 설정되어야 하는 법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통계'의 기준은 여전히 '일반적 기업의 그 궁극의 목표'에 맞추어 정의된 것뿐이다. 따라서 외부자의 '통계'에 기초한 평가는 내부자의 인식과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불일치가 다시 내부자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내부자인 조직원들이 그 불가피한 괴리를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그 괴리를 '스스로 정한 목표를 외부 기준에 맞추는' 식으로 줄여선 안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새기지 않으면, 협동조합이 형식은 자율적 조직이되 목적이 이미 주어져 있는 보통의 기업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2. 

4-50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업자 협동조합과는 달리, 청년들의 협동조합은 소득 창출 활동을 대체하는 식보다는 생활 전반의 리스크 총량을 관리하는 식으로 생겨날 것이고, 실은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어제도 말했듯이, 청년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비숙련 노동자이며, 이른바 '사업'에 필요한 금전적, 사회적 자본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함께 함'으로써 리스크 총량을 관리하는 일은 그야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제 함께 한 토닥토닥협동조합은 아마도 이 일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 '금융 안전망'을 제공하는 식으로 추구하는 조직일 것이다. 롤링다이스는 돈을 쓰는 일로 소진할 우리의 놀이를 생산적 활동으로 채운다.(고로 1.에서 이야기한 것과 연결해 롤다의 경제적 성과를 굳이 따지자면, 우리의 수입은 (놀이에 써버렸을 잠재적 비용 + 실제 수입)이다. 당연히 '놀이에 써버렸을 잠재적 비용'은 GDP 같은 것엔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생활 전반의 리스크 총량을 관리하고, '함께 함'으로써 리스크를 헤지하려는 시도는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을 바탕에 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제 웃으며 얘기했지만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 "크게 성공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느니 망하지 않고 소소히 버티겠어"라는 태도는 단순한 열정의 결여로 폄하받을 일이 아니다. 저성장 시대, 인생에서 부딪히는 리스크를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복지후진국에서 사는 개인에게 어쩌면 가장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리스크를 늘리지 않고 '다른' 식으로 우리의 욕구를 채우는 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아마도 열정이라는 게 있다면, 그 열정은 이렇게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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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 모두를 볼 때,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 공부와 생각을 나누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비즈니스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려볼 줄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나야 10년을 온통 숫자 두드려보는 일을 하며 살았으니, 어쩌면 그 점은 늘 당연히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의 활동을 스스로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측정할지, 우리는 이 활동을 통해 어떤 삶의 태도를 좇고 있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의 관성에 끌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