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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일 애호가'와 일하는 법

일을 맡으면 앉으나 서나 일 생각에 골몰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같은 소릴 허다하게 듣는 사람들. '일 애호가'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은 곧 자기 자신이다.





당신이 그의 상사라면, 일 애호가의 인풋(작업 시간이나 장소, 방식)을 관리할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시도는  일 애호가들의 생산성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결국 일 애호가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 열정을 쏟을 다른 '꺼리'를 찾거나. 


일 애호가는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고로 자신이 알아서 열심히 한다는 걸 믿어주지 않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일이 자신의 주도 아래 있기만 하다면,  오히려 보상이 적은 것은 그리 개의치 않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쉽게 이용 당하곤 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원하는 대로 판을 짜서 일을 꾸려 나가게 두고, 정기적으로 진행 상황을 논의하는 정도로 관리해야 한다.(뒤집자면, 당신이 일 애호가이고 자율성을 얻고자 한다면, 상사가 진행 상황을 묻기 전에 먼저 알리는 게 좋다. 상사가 불안하지 않게 해주는 게 결국 당신에게도 편한 일이다.)


문제는 진짜 일 애호가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일이 제일 재밌어요" 시늉을 잘 내기 때문이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세상이 가르치지 않던가. 시늉하는 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다. (딴 얘기지만, 사실 일 애호가만 넘쳐나는 세상은 끔찍하다. 팀의 구성원 모두가 일 애호가라고 팀이 잘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브레이크를 걸 줄 알고, 느긋하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사람이 때로는 보석 같은 존재다. 이런 '느긋쟁이'들이 기꺼이 느긋하게 살 수 있게, 모두가 일 애호가 시늉을 해야 하는 세상은 좀 꺼져줬으면 좋겠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거의 이력이 그 애정을 증명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결과로 보여지지 않는 애정은 공허할 뿐이란 건 연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을 향한 애정은 결국 성취의 경험으로밖엔 확인할 수 없는 법이다. 


이 방법에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트랙레코드가 쌓이지 않은 젊은이에겐 먹히지 않는다. 아직 성취의 역사가 충분치 않은, 젊은 일 애호가를 알아보는 것. '감'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젊은 일 애호가와 함께 제대로 일하려면, 알아본 뒤 놓아두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들은 대체로 일을 향한 애정은 넘치지만 아직 미숙하다.(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적절한 관리(혹은 보조)가 필요하다. 아직은 애정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과 스킬을 대신 채워줘야 한다. 그런데 자율성을 갈망하며 또한 대체로 인정욕구 넘치는 이들을 도우려면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잘못하면 간섭으로, 꼰대질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원래 간섭과 코디네이션, 꼰대질과 지원은 종이 한 장 차이요,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할 수 있는 상대적 개념 아니겠나. 


꼰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젊은 일 애호가의 '애정'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 일만 잘 된다면 그의 페이스대로 일하는 것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런 '신뢰'를 얻고,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해지면, 일 애호가는 때로 별 거리낌 없이 기꺼이 꼰대질을 받아들인다. 그 한 가지 조건은 바로 이 사람과 일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기실 일 애호가가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므로, 일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면 못마땅한 구석이 있더라도 대체로 너그럽게 견뎌낸다. 거기에 그 사람과 일함으로써 배우는 게 있다는 생각까지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 그러니 결론은 애석하게도, 당신이 결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희망을 버릴 건 없다. '훌륭한' 사람이 완벽한 사람인 건 아니고, 어느 한 구석 훌륭한 사람이면 때로 충분하다. 그걸 이 젊은 일 애호가가 알아주기만 한다면.  


*) 사족으로, 또 다른 주의점.

모든 일 애호가가 언제나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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