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쓰거나 옮기거나 만든 책 이야기

불교 심리학과 스피노자

불교심리학 책인 "미스리딩 마인드The Misleading Mind"의 원고 편집을 하고 있는데,

요즘 짬짬이 읽는 스피노자와 엄청 공명을 일으켜서 짜릿짜릿 놀라고 있다.


예를 들면, 고병권 샘 스피노자 강의록에 나오는 에티카의 정리 17.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갖게 되는 직접적 표상은 그것이 결국(최종 심급에서) 사물들의 실재적 본성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물들에 대한 상상적 표상을 하는 주체의 신체의 본성을 더 많이 지시한다.


그리고 이런 말도,


우리 정신은 신체에 직간접적으로 작용을 가해오는 많은 것들을 지각하지만 그런 지각이 그런 작용을 가한 물체들의 참된 구조를 알려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변용들이 지시해주는 것은 대상들의 실재적 특징보다는 우리 자신의 신체상태다.


어떤 변용을 지각하는 한에서 그 대상의 실존을 믿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대상이 더 이상 실존하지 않을 때조차 우리는 그 실존을 믿게 되는 일이 있다.



비슷하게 공명하는 "미스리딩 마인드"의 이런 구절들.


심판 세 명이 바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셋은 자신들 직업의 곤란함,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해 외쳐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심판이 꽤 자신 있게 말합니다. “난 볼과 스트라이크를 있는 그대로 판정해!” 약간 불만이 있다는 듯, 두 번째 심판이 말합니다. “아냐, 아냐, 아냐. 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해.” 이때 세 번째 심판이 말합니다. “둘 다 틀렸어. 볼이든 스트라이크든 내가 외치기 전엔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이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해석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네요. 첫 번째 심판은 세상이 실제 존재하는 대로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심판은 존재하는 세상을 우리가 해석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 심판은 우리가 인식을 통해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


아무리 날것 상태의 경험이라 해도 그 형태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한번 사람의 의식에 생각으로 떠오르면, 이미 그것에는 이름표가 붙고 해석이 붙습니다. 색깔과 움직임이 야구가 되었고, 우리는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좋은지 나쁜지 이미 판단해버렸습니다. 얼핏 생각할 때 우리가 경험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는 적극적인 참여자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조차 현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창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