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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무언가 쫓기는 기분, 사실 별 궁금하지 않은 것들인데 알아둬야 할 것만 같은 강박감은 내겐 아주 오래된 익숙한 감정이었다. 금융계에 있던 시절, "나는 이 일을 오래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장은 늘 빠르게 돌아가고,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또 이리저리 움직였다. 절대 멈추지 않는 정보의 흐름.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궁금하질 않았다. 신문을 읽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었고, 안테나를 세우고 코를 킁킁거리며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한 일을 두고 "그런 일이 있었나요?" 같은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어떻게든 기본이나마 남들 아는 만큼은 아는 시늉을 하며 애써야 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정도는 다르다 해도, 근본적으로 그 "쫓기는 기분"이 사라지진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요즘 협동조합이란 토픽에 잔뜩 관심이 쏠렸는데, 아니 이 녀석이 하필이면 요즘 한국에서 소위 "뜨는" 필드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쏟고, 그 덕에 엄청나게 많은 사건과 변화가 일어난다. 어디 가서 이쪽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정보들을 기본 정도는 익혀두어야 하는 거겠지. 그게 허덕허덕하다. 그런데 사실 내가 정말 관심 있는 건, 당장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일들이 아니다. 중세 수도원 문화에서부터 이어져 온다는 시민 경제와 그 속의 협동조합, 협동조합이 기대고 있는 인간의 본성, 협동조합이 현실 구조로서 더 잘 기능하게 할 수 있는 준거의 틀. 어쩌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지 않은, 어쩌면 별 쓸데가 없을 것 같은 사안들이다. 그러니 늘 허덕허덕 "핫한 정보"를 쫓는 데 급급하고, 정말 알고 싶은 것, 고독한 분투 없이는 만날 수 없는 앎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



어제 서울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기 시작했다. 가슴을 턱턱 막히게 하는 문장이 도처에 깔려 있어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신에 도달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얻지 않으면 안 되고, 매일 최신의 정보로 갱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겁에 질린 강박관념에는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아를 지향하며 '모든 것'의 환상 아래 살포되어 있는 정보를 악착스럽게 긁어모으는 것. 그것이 뭐가 될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 하이데거도 '정보'란 명령이라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들 명령을 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_23쪽



그리하여 지은이 사사키 아타루는 정보를 거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무지를 택하고, 어리석음을 택하고" "안테나를 부러뜨리는 것을 택하고, 제한을 택"했다고 한다. 정보를 수집하는 쪽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고하고 쓰는 행위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니체의 말이 잊히지 않았"고 "그의 책을 읽었다기보다 읽고 말았"기 때문에,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이상, 그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은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인용은 35-36쪽)


그 니체의 말은 이런 거다.


오오, 여러분,  ... 여러분은 모든 사건에 - 항상 뭔가가 일어나므로 - 한마디 하는 것을 의무라고 알고 있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먼지를 일으켜 떠들어대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여러분은 늘 귀를 기울이며 늘 한마디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으므로 진정한 생산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설사 여러분이 아무리 큰 일을 갖널히 바란다고 해도 회임의 깊은 과묵은 결코 여러분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시대의 사건이 여러분을 겉겨처럼 따라간다. 여러분은 사건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_30쪽



혹은 이런 것.


'철학자'란 오늘날에도 아직 가능할까? 이미 알려져 있는 사항의 분량이 너무 방대하지 않을까? 그가 양심적일수록, 그가 모든 것을 시야에 넣는 것은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게 아닐까? 그의 최고 시기가 지나버린 뒤, 뒤늦게나마, 라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그 경우 적어도 그는 상처투성이고 변질되고 타락해버렸을 테니 그의 가치판단에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반대 경우에 그는 한 사람의 딜레탕트가 될 것이다. 그는 주위에 무수한 안테나를 둘러치고는 있지만 그 대신 커다란 파토스를 잃고 자신의 존엄을 잃는다. ...


_29쪽



나도 감히 말해본다면, 읽었기에 읽고 말았기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텍스트들이 있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으며 나를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한 그때의 그 텍스트를 다시 펼치고 싶어졌다.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만들고 그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것, 

현실에서 "기본"은 되는 행세를 하고 살고자 허덕허덕 정보를 챙겨두는 것.

과연 이 일을 끊어낼 수야 있겠는가. 내가 니체이거나 사사키 아타루만큼의 그릇이 아닌 이상.


그렇지만 강박감을 제쳐두고 그저 "읽고 또 읽고 반복하여 읽는" 시간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사키 아타루의 말이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말았으므로. 그리하여 나는 또 쓸데없이 책을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쓸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인용하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사를요.

"초조해 하는 것은 죄입니다."


_115쪽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저자
사사키 아타루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2-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읽고 쓰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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