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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판단의 중지

인간은 말과 이미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각자는 종교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자기의 고유한 상상계에 맞추어 각색해야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상계는 자기의 것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우정은 정신의 융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중지와 확인에 대한 기대 안에 있다.  내 생각에는 스피노자의 좌우명의 의미도 바로 이런 것이다. 스피노자가 자기 편지 위에 찍었던 봉인의 의미 말이다. Caute, 그것은 "신중하라!"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함은 "결코 예속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인간 본성의 자유다."

...

아주 사소한 우둔함을 찾아내고, 부조리와 추문으로 환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스피노자는 할 말을 참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신랄한 비평가다. 특정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후대의 스피노자주의자들이 "이데올로기"나 "담론"이라고 부르게 될 어떤 것을 공격할 때에는 특히 더 그랬다. 또한 나쁘게만 해석하고 결점만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보인다고 생각될 때에는 영원히 절교해 버렸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으로는 스피노자도 lecito difficilior, 즉 어려운 독서에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너그러운 독서, 확장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독서 말이다.


_ 80~81쪽


자신에게 없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간은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만큼만 다른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에 대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대로 일련의 회로를 파악해내고, 그 작동 방식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법을 찾아내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리고 이 일은 판단을 중지할 때, 다시 말해 점수 매기기나 평가하기를 그칠 때만 원활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와의 관계 맺기가 가능해진다. 이런 식으로라도 함께 무언갈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공통의 시간만큼 공통점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리하여 결국 이해의 폭도 깊어진다. 이해의 폭이 깊어진만큼 나의 역량도 확대된다. 이해하는 만큼이 곧 역량이니까.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저자
아리엘 수아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0-12-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해학으로 가득 찬 스피노자의 철학 동물원철학 스케치『스피노자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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