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속 생각들

초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제 설악산에 다녀왔다. 흘림골에서 오색약수터로 내려가는 코스를 걸었다. 대관령에 살고 있으니 눈에 걸리는 게 산이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인 설악산은 그 위용이 확실히 다르다 싶었다.






열 명 남짓의 일행과 함께 걷는데, 대부분이 산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의자 위에서 하루 열두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라면, 조금만 오르막이 나와도 말문이 닫히고 다음 걸음으로 발을 들어 옮기는 데 급급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걷다가 조금 여력 있는 한둘이 "야, 경치 봐라. 정말 멋있다" 하니 땅만 보며 걷던 이들이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고 경탄을 보탠다. 


그러다가 한 명이 "그렇게 가끔씩 경치보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안 그러면 땅만 보다가 다 끝나겠어요." 한다.


과업에서 잠시 떨어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마음에 여백을 넣을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 초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을 오를 초심자에게 갖추어야 할 옷차림이나 배낭에 챙겨야할 것들이 무언지를 조언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산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길을 걸어내는 건 온전히 그의 다리에 달린 일이다. 산을 오르는 법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몸을 단련해 산에 길이 드는 수밖에는 없다. 산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끝까지 길을 걸어내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순간, 동행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잠시 고개를 들어 경치를 보도록 상기시켜 주는 것뿐이지 않을까.


숨이 밭아오고, 다리는 천근만근일 때, 

그래도 이 짓을 왜하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주는 것. 잠시 물리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아마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지기 전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짬을 선사해주는 것.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숨을 골라야 하는 것과 경치를 누리며 그 덕에 자연스레 숨을 고르는 것은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니므로.



* * *



"평소에 운동 좀 해야겠다"는 말은 최악이고,

"힘내!"라는 말은 하나마나.

대신 "야~, 경치 좀 봐!"라고 상기시켜 주기. 

다음번 산행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일상 속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위나 기대는 별 쓸모가 없다  (1) 2013.08.15
별을 보려면  (2) 2013.08.12
부조리  (0) 2013.05.14
지난 금요일의 단상  (0) 2013.04.28
경과보고  (0) 201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