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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거나 옮기거나 만든 책 이야기

점수 매기는 권력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1부 함께 읽기



학창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시험을 앞두고 무턱대고 달달 외워댔던 수많은 내용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 있질 않습니다. 책상 앞에만 붙들렸던 게 아닙니다. 줄넘기 실기평가 준비한다고 몇 시간을 쿵쿵 뛰기도 했고, 리코더 시험 분다고 오밤중까지 뱀 나오도록 피리를 불기도 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런 일들에 숱한 시간을 쏟아 부은 이유는, 다들 쉽게 예상하시다시피, 단 하나죠. 시험을 보고 점수가 매겨졌기 때문입니다. 전부 쓸데없는 일이기야 했겠느냐마는, 아마 다른 것에 점수가 매겨졌다면 저런 일들을 했을 리가 없겠지요. 시험과목이 아니었다면, 엄마도 날 붙들고 앉아 사회과부도는 잘 외웠는지, 줄넘기는 잘 뛰는지, 리코더는 잘 부는지 체크해보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딸이 좋은 점수 받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했겠고, 학교에서 시험까지 본다면 익혀두면 좋은 것이겠거니 하는 믿음도 있으셨겠지요.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엄마도 있을 겁니다. 학교 점수란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고, 자식 인생에 무엇이 쓸모 있을지는 아이와 부모가 직접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 그야말로 깨인 엄마들도 분명히 있지요.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암기과목과 줄넘기 횟수를 놓고 점수를 받아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엄마의 뜻이 뭐건, 아이는 학교에 가면 성적 나쁜 아이로 분류됩니다. 엄마 말이 옳다고 믿지만, 주눅이 들기도 하고 가끔은 이래도 되나, 불안한 기분도 들겠죠. 엄마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엄마만큼 확신 없는 아빠는 아이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냅니다. 성적 좋은 아이를 둔 옆집 엄마가 은근히 으쓱댈 때마다 속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댁의 아이는 똑똑한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는 것뿐이라고 쏘아부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게 바로 ‘측정’이 부리는 마법입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점수를 매겨 측정하기 시작하면, 그 일이 갑작스레 중요한 일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이, 행동이 달라집니다. 속속들이 따져보기 전에 일단 점수는 잘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요. 거기에 그 점수에 따라 상벌이 매겨진다면, 측정의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꼽히는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말,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 If you can't measure it, you can't manage it.”가 달리 나온 게 아닙니다. 그리하여 무엇을 어떻게 측정할지 결정하는 곳에 권력이 있습니다.


마조리 켈리는 전작 『주식회사 이데올로기』에서 경제 귀족주의에 붙들린 현실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경제 귀족주의의 핵심에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주식회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마조리 켈리의 주장입니다. 사실 금융위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주주 중심 경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미국에서만큼 불가침의 성구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눈곱만 한 지분율로도 기업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재벌 오너 패밀리 덕에 주주 간에도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했으니, 최대화해야 한다는 주주 이익이란 것에도 종류가 있었던 셈이지요. 그럼에도 미국 기업이든 한국 기업이든 공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순이익입니다. 순이익이 손익계산서 맨 아랫줄을 장식하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용되는 원칙입니다. 영어에서 바텀라인bottom-line이라는 표현이 뜻하듯, 순이익이 바텀라인에 위치하는 이유는 그게 기업 활동의 최종 결과이자 핵심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주가가 적정한지 평가할 때, 신용평가기관이 등급을 매길 때, 은행이 돈을 빌려줄지 말지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숫자가 바로 이 순이익입니다. 단순히 측정만 하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엄청난 상벌이 뒤따른다는 이야기지요.


순이익이란, 단순히 말하자면, 매출에서 비용을 빼면 얻어지는 숫자로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을 가리킵니다. 매출은 물건을 산 고객들에게 받는 돈이고, 비용에는 생산할 물건에 쓰일 재료비는 물론이고, 직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 나라에 내는 세금이 모두 포함됩니다. 고로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고객들에겐 가능한 한 비싼 값을 받고, 재료 공급업자에겐 되도록 싼 값을 지불하고, 직원은 최소한의 숫자로 고용하여 가능하면 적은 월급을 주고, 세금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최소화하는 게 순이익을 늘리는 법이요, ‘성과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받는 비결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회계는 공평무사한, 기계적인 절차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누가 기업의 주인인지를 규정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그것이 이데올로기인지 모를 때에만 이데올로기로서의 힘을 발휘하는 법이지요.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서 이야기하는 ‘추출적 경제extractive economy’는 이처럼 순이익을 맨 아랫줄에 두는 회계방식을 토대로 삼습니다. 말 그대로, 고객과 공급업자와 직원과 국가의 몫을 빼서extract라도 주주의 몫만 늘릴 수 있다면 칭찬받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기업을 소유한 이가 고객도, 공급업자도, 직원도, 국가도 아닌 주주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만 바텀라인에 앉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바텀라인으로 돌아가는 몫이 아니라면, 그 어떤 좋은 일도 주인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선의란, 인류의 역사 내내 그래왔듯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의 1부에서는 추출적 경제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게 이끄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학생들이 별생각 없이 암기과목을 달달 외우고 입술 아프도록 리코더를 불 듯이, 이익을 높이는 기업의 활동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기업에서 월급 받으며 생계를 해결하는 이상, 그런 기업의 목적에 복무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모기지 중개인은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든 모기지로 돈을 빌려 집을 사게 만들고, 트레이더는 1초에도 수차례 숫자들이 바뀌는 스크린을 보며 한 푼이라도 남는 거래를 체결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이들에게 순이익은, 그리고 순이익과 연결되어 자신에게 따라붙는 성과지표는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삶의 일부이지만, 결국 집을 잃고 빚더미에 오를 부부나 아차 하는 순간 수십억을 날릴 스크린 너머 거래 상대방은 오히려 실체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아니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요.


물론 특별한 경험을 겪었거나 남과 다른 감수성이 있어, 남들은 다 당연하다는 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앞서의 “깨인 엄마”가 그러하듯, 끊임없이 세상과의 불화를 속으로 삼켜내는 짐을 지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끝끝내 기준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길러내더라도 세상과 완전히 섞여들지 못했던 기억은 아이에게 좋든 나쁘든 흔적을 남길 게 분명합니다. 아니면 결국 그 짐을 견뎌내지 못하고 학교의 기준에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 모르죠. 그러나 좌절하기는 이릅니다. 시도해볼 만한 제3의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만의 측정 기준, 그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 구조가 순이익을 맨 아래 두는 회계방식처럼 온 세계로 퍼져 나가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이든 셋이든 힘을 모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 때, 그 기준에 따라 측정하고 소통할 때, 삶의 변화는 작든 크든, 그 즉시 생겨납니다. 다음 세미나에 함께 읽을 2부와 3부에서 그런 식으로 변화를 일궈낸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조리 켈리는 프롤로그에서 “[새로운] 모델들은 제2의 애덤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의 머리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 소망,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 기지, 수많은 사람의 수고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의 난상 앞에 수많은 사람이 “대안은 없다”고 말할 때, 켈리는 이미 “대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까지 뻗어 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들을 통틀어, 세상에 무언가를 더 보태주는generate 생성적 경제generative economy라고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이름을 아는 꽃이 눈에 더 쉽게 들어오듯, 곳곳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이름을 붙여줄 때, 그 변화가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누군가의 설계도대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게 아니듯,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역시 설계될 게 아니라 발생할 겁니다.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먼저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매료되어 그 흐름에 가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그렇게 대안은 발생하여 퍼져나갑니다. 벼락 맞은 배나무 아래서 저절로 피어난 목련나무가 마당 전체로 퍼져 나가듯이. 어쩌면 우리는 그 발생의 현장을 이미 목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저자
마조리 켈리 지음
출판사
북돋움 | 2013-05-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협동조합, 종업원소유기업, 지역공동체은행, 코하우징... 주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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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이데올로기

저자
마조리 켈리 지음
출판사
북돋움 | 2013-03-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일하지 않는 주주 몫은 ‘이익’인데, 왜 직원 몫은 ‘비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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