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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거나 옮기거나 만든 책 이야기

주인의 권리, 주인의 책임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2,3부 함께 읽기


‘주인’이라는 말을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시나요? 무엇의 주인이라면, 그 무엇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키죠. 그렇다면 소유한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요? 보통 소유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처분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주인’이란 물건이나 재산에 대해서만 쓰이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인생의 주인이라거나 국가의 주인이라거나 하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인생이나 국가는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럴 때 쓰이는 ‘주인’이란 말은 어떤 뜻일까요?

저는 주인됨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그 대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대로 사용하고 처분할 권리를 갖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게 바로 주인입니다. 집에 물 새는 곳이 있으면 집주인이 고쳐주어야 하고,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뿐 아니라 차주 역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요. 권리가 있으면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은 주인됨에도 오롯이 적용됩니다. 주인의 권리란 늘 주인의 책임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주식회사, 이른바 유한책임회사에서만은 주인의 권리와 주인의 책임이 묘하게 따로 놀기 시작합니다. 주인됨에 따르는 책임에 ‘유한’이라는 말이 붙으면서 주인은 그저 내가 들인 돈만큼만 책임을 지면 그만인 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말이 책임이지, 그저 잘못된 투자에 대해 돈을 잃을 가능성을 감당하라는 의미인데, 일상적인 의미에서라면 그걸 책임이라 부르는 것도 좀 어색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에 들인 돈을 넘어서는 책임은 과연 누가 지게 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면 대차대조표에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법인데, 주주를 빼고 나면 채권자만이 그럴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돈 빌려준 채권자의 권리에 부응하는 책임이라는 것도 그저 자신이 빌려준 돈만큼의 손실을 감당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기업이 일으키는 문제는 주주와 채권자가 들인 돈으로 ‘책임’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업 경영의 부실은 정리해고 당하는 종업원이 함께 책임지기가 일쑤이고, 2008년 금융기관의 거대한 도박을 뒷감당해야 했던 건 주주만이 아니라 공적자금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온 국민이었죠. 망가진 후쿠시마 원전이 내뿜는 방사능을 감당해야 하는 건 도쿄전력의 주주가 아니라 후쿠시마의 주민이며, 나아가 지구의 모든 생명체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주주가 아닌 다른 모든 이해당사자의 책임은 유한하지 않고 무한합니다. 유한한 책임을 지는 주주는 기업의 ‘주인’으로서 이사와 경영진을 선임할 권리, 기업의 사업과 자산을 처분할 권리를 지니지만, 기업에 아무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책임에는 그 한계가 없는 게 현실이죠. 삶의 근거지를 잃고만 후쿠시마의 주민, 평생을 일해온 터전에서 쫓겨난 해고노동자는 삶 자체로 무한한 책임을 떠맡습니다.


이런 식의 기업 구조 이면에는 기업을 단절된 기관으로, 나아가 금전적 자원의 집합체로 보는 관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 아래서는 금전적 자원의 원천이 된 채권자와 주주가 돈 들인 만큼만 책임을 진다면, 더 져야 할 남은 책임은 존재하지 않는 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은 무한한 연쇄 속에 연결된 지구 공동체의 일부이며, 그 자체가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 기업의 울타리 안에도 종업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이 삶을 꾸려가고, 그 바깥에서도 많은 사람이 기업의 활동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의 2부와 3부에서는 이런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생겨난 다양한 경제활동 공동체가 소개됩니다. 기업의 종업원이나 생산자가 소유지분을 갖는 기업들, 거주민이 직접 집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거주민소유공동체,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풍력발전소 등, 모두 경제활동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직접 주인된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주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업 활동의 기반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에 소유권이 주어”질 때(뿌리내린 구성원Rooted Membership), 기업의 목적은 단순히 “단기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금전적 목적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삶으로 무한히 책임지는 이들이 주인이 되어, 이익만 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기업을 경영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기업은 자연스레 삶을 위한 목적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 *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쓴 김상봉은 「말과활」 창간호에 실린 글에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는 끝없는 장광설을 늘어놓다가도 정작 그것을 극복할 대안과 방법에 대해 물으면 거의 예외 없이 침묵”한다며, “기업의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 대다수가 새로운 기업 지배구조를 상상할 줄은 알아도, 그것이 어떻게 작동 가능한지 생각할 줄은 모른다”고 비판합니다. 

제가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를 읽으며 가슴이 뛰었던 이유도 이 같은 비판과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삐 풀린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수많은 책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마르크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따지기 시작하면,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칠 만큼 많습니다. 그럼에도, 대안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기존의 시스템에 더 많은 규제를 덧붙이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된 권리를 누리는 것, 기업이 금전적 목적을 제일로 추구하는 것은 여전히 마땅한 전제로 받아들입니다. 이 전제를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해도, 이로부터 벗어난 대안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 가능할지를 놓고는 고개를 갸웃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마조리 켈리는 있는 것의 비판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출발”하자고 말합니다. “인간의 삶, 지구의 삶에서 시작해서 생명이 번성하기 위한 조건을 어떻게 생성할지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경제의 세계에서 이상理想의 귀결은 무엇일까? 이걸 막고 저걸 금지하는 식의 규제적 접근은 이상의 문제가 아니다. 규제에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다.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언제나 그럴 것이고, 지금보다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심오한 꿈을 꿀 때다. 공정성과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같은 이상을 중심에 둔 경제,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공정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경제,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유익한 경제, 번성하는 지구에서 인류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하는 경제를 꿈꿔야 한다.

_290쪽


마조리 켈리의 말대로, 규제에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을 찾기는 힘듭니다. 무언가에 반대하는 것, 무언가를 금지하는 것을 추동하는 힘보다는 원하는 것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는 힘이 더 크고 오래가기 마련입니다. 


일부 운동가 및 이론가들은 ··· 어떻게 모든 주요 기업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구조로 바꿀 수 있는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들은 법률과 규제에서 출발하길 원한다. 내 본능은 법률과 규제 대신 긍정적 모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스템의 에너지는 부정적인 것(이것은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식의) 주변에서는 스스로 조직화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비전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처럼, 스스로 자석 같은 힘을 뿜어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생성적 구조의 긍정적 비전이 필요하다.

_228쪽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는 현실에서 바로 지금 작동하고 있는 다양한 대안이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등장합니다. 어떤 대안은 아직 너무 작고 미미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대안은 시장경제에서 놀랄 만큼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저를 매료시켰던 것은 그 안의 사람들이 겪은 삶의 변화들이었습니다. 4년 만에 처음 휴가를 떠날 수 있었던 존루이스파트너십의 에마, 오가닉밸리의 소유주로 가족이 함께 농장을 꾸리는 마이어 가족, ‘지각’ 같은 건 걱정하지 않는 사우스마운틴 컴퍼니의 직원, 어부 24명이 꾸려가는 바닷가재협동조합의 설립을 도운 키스 등.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삶에서 출발하여, 무언가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니라 ‘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생성해나가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이들의 삶이 혁명처럼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마이어 가족도, 에마도 삶의 다른 국면에서는 여전히  ‘추출적’ 경제와 부딪히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작든 크든,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분노하거나 냉소하는 대신, 무엇이든 ‘하는’ 것으로 반응하지 않을까요? 그 반응은 이길 때까지 삶을 잡아먹는 투쟁이 아니라, 시작하는 순간 조금이나마 변화를 선사하는 실험일 수 있을 겁니다.


신전의 파수꾼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이단의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대안은 있다.

_290쪽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저자
마조리 켈리 지음
출판사
북돋움 | 2013-05-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협동조합, 종업원소유기업, 지역공동체은행, 코하우징... 주식회...
가격비교




말과활 7호 (격월간) 2,3월호

저자
일곱번째숲 편집부, 편집부 지음
출판사
일곱번째숲 | 2015-02-02 출간
카테고리
잡지
책소개
《말과활》 6호는 설치미술가 임민욱의 작업 내비게이션 아이디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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