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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라디오 책다방> 이번 에피소드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을 종종 듣는데, 이번주 홍세화 '말과활' 발행인이 출연한 에피소드가 참 좋았다. 보통 침대에 누워 팟캐스트를 듣다가 잠들기 때문에 1시간짜리 에피소드를 다 듣는데 1주일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번 <라디오 책다방>은 이틀만에 다 들었다. 책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대개 읽었던 내용이었던지라 내게는 딱히 새로운 건 없었지만, 감정이 실린 본인의 육성으로 듣는 메시지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갑내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상대가 형처럼 느껴져서 "나와 동기다"라는 말을 되뇐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서 40-50대를 보낸 이들(그것도 특히 엘리트 남성)이 겪는 어떤 "사회화"의 과정을 경험하지 않은 자신이 상대적으로 젊게/어리게 느껴진다고 말했는데, 상당히 공감이 갔다. 프랑스에서 보낸 20여년이 한국의 속도로 치자면 7년 정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나이를 계산한다는 말이 재미있었다. 

corporate ladder를 한칸씩 올라가던 삶에서 벗어나 대관령에 머물다 보면, 나의 시계도 굉장히 천천히 흐른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런 것과 비슷한 걸까. 타이틀이 주는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힘 있음'을 연기하다보면, 더 잘 연기하는 만큼 실제로 힘이 있다고 믿게 되고 만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생각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신이 지금 지닌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진짜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생각의 좌표'에서 읽었을 때도 와닿았던 구절인데, 새삼 떠오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아마 여기에 생각이 아닌 욕망을 넣어 읽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물론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망이야 가지고 태어나는 거지만) 자신의 생각과 욕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며 살기 쉽지만, 거기서 진짜 나의 것이랄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문제는 진짜 나의 것을 찾자는 게 아니라, 진짜 나의 것이랄 게 실은 거의 어쩌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걸지도. 그래야 어떤 하나의 관점과 판단, 욕망에 붙들리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밖에도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책이 아니라 밑줄을 그어둘 수 없는 게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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