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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어떤 시절

치열히 애를 쓰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 거기에 좋은 조건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까지.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른 전후의 여자들에겐 내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그런 모습들 앞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며, 그 기억은 과거에 완결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터다.


어떤 식으로든 원하는 자아상이 있고, 그 옆에 자신을 세워놓은 뒤 둘 사이의 차이에 자책하던 기억.


이런 식의 이야기가 꼰대짓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가 그이들의 모습에서 "어떤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데는 심리적 오류가 상당 수준 개입한다는 것도.


모든 사람의 경험은 다 특별하고 다르며, 하나의 틀로 환원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서른 전후 그녀들의 고군분투 앞에 일어나는 아릿한 감정은 일종의 자동반응이므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어줍잖은 위로나 조언 같은 건 하지 않으려 애쓸 밖에. 그래도 좀 친한 사이라면, 요청하지 않는 조언이나 위로보다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께"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나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닥 고생 같은 건 해보지 않고 살아온 쪽이다. 개인적으로야 나름 힘들게 버티며 견뎌온 시간들이 있었지만, 어디 가서 "나도 고생했다" 같은 소리를 할 순 없다는 걸 안다. 나름 힘들었던 시간을 뚫고 지나올 수 있었던 데는 평탄한 외적 조건이 크게 한몫 했다는 사실도.

그게 어쩌면 내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게도 털어놓거나 나누고 싶은 어떤, 지난 이야기가 있긴 하다. 좌표 없음이라는 좌표를 세울 수 있게 해준 시간들, 건강하고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오롯이 추구할 것임을 마음 먹었던 시간들. 그리하여 니체식으로 "건강해지려는 의지"만으로 정향할 수 있게 이끌어준 시간들. 그 시간의 이야기를 별 자기검열 없이 쓸 수 있는 때가 올까. 뭐 오지 않으면 그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