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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자유를 포기하는 대가라면

직장 생활의 마지막 두 해 정도,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통제력의 상실이었던 것 같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 마지막 두 해는 오히려 그전에 비해 내 일상에 대해 더 큰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전의 시기는 무척 바빴다. 회사 일이 내 일상을 대부분 잠식하고 있었으므로 회사 일 이외의 것을 계획하고 시간을 쏟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매일 꼬박꼬박 운동을 했던 것이 그나마 나에게 해방감을 선사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일이 있어서 늦게까지 일해야 할 때는 몸이 피로한 것을 빼고서는 오히려 별 불만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혹은 운 좋게도, 나는 일이라는 것 자체를 즐기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일에 몰입하는 순간들, 사람들의 의견이 부딪히고 그것들이 하나의 계획이나 전략으로 녹아드는 시간들을 좋아했다. 고로 일 때문에 늦게 남는 것이 나의 선택인지 강제된 상황인지에 대한 구분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다.(물론 전혀 푸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교스런 불평 수준을 크게 벗어난 적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두 해(물론 당시에는 그게 마지막 두 해가 될지는 몰랐지만), 갑작스레 시간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의 물리적 총량이 줄어들었고, 회사에서 앉아서도 이른바 '딴짓'을 하는 게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그냥 좋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상태로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나는 오히려 내 일상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설사 앉아서 '딴짓'을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장소에 내 몸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내놓는 결과물의 대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내 시간을 판 대가, 이른바 내 자유의 일정 부분을 포기한 대가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둘의 차이는 정확히 내가 내 일상을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내 자유에 아무리 비싼 값이 매겨진다 해도, 그걸 떼내어 팔아서 살고 있다는 실감은 뼈아팠다.


더구나 그 자유의 '일정' 부분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대체로 칼퇴근을 예상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퇴근 후의 시간을 나름의 계획 아래 조직해내기 시작했는데, 그 나름의 계획은 언제나 침탈받을 위기에 있었다. 평소엔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국경선에서 어슬렁거리며 보초를 서다가, 어떤 작은 낌새라도 보이면 내 존재를 온통 바쳐야만 하는 처지였달까. 국경선의 보초인 처지에 "아, 저 오늘 저한텐 7시에 약속이 있었거든요."라는 말이 통할 수 있었겠나. 결국 내가 받는 임금은 나인투씩스에는 반드시, 그외에도 필요하다면 언제나 내 존재를 전선에 가져다 놓겠다는 약속의 대가였던 셈이다. 그것은 내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섹시한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우습게도 나는 이 사실을 전선에 있지 않아도 되는데 있어야 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고서야 깨달았다.(직원들을 놀려선 안 된다는 사장님들의 푸념은 틀린 소리가 아닌 것이다.)


* * *


몇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있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한 주된 동력이었다. 그러나 내가 종지부를 찍었던 것은 '직장'이었지 '일'은 아니었음을 지금은 뚜렷이 안다. 그때는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나의 '일'이란 직장을 넘어서 있어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직장을 떠난지 이제 3년을 넘어선 지금, 총량으로 보았을 때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 '일'을 한다. 그런데 내가 벌이는 이 활동들에 스스로 '일'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게 된 것도 최근에 들어서인 것 같다. 한동안 내가 벌리는 이 활동들이 놀이고 취미인지, 아니면 일이나 노동인지 정말 잘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저 '일'들은 '놀이'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일'쪽의 정의에 기우는 것은 내가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저 활동들을 하며, 고로 상호 합의한 약속에 따라 - 일정이나 결과물의 퀄리티라는 측면에서 - 움직여주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롤다의 코디네이터이며, 출판 기획/편집자이며, 번역가이며, 경영 컨설턴트이며, 공부하는 사람인 요즘, 이 총합이 내게는 아귀가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일'이다. 각각에 미흡한 면은 있겠으나 총합으로서 내 삶을 지금으로선 최적화해주는 조합. 저것 중 하나의 것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았다면, 지금과 같은 생산성도, 즐거움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조합도 시간이 흐르며 바뀌겠지만, 지금으로서 나는 이렇게 조합된 내 '일'- 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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