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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일에 대한 강박을 관리하는 길잡이

세넷의 '장인'은 어떤 자기계발서보다도 일 잘하는 법에 대해 많은 지침을 주는 책이다, 적어도 나에겐.

이런 걸 기대하고 읽기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애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아주 마음에 든다.

특히나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이 있어 여기에 옮겨둔다.


* * *


417쪽부터 419쪽까지. "일상의 일에서 강박관념을 좀 더 잘 관리하는"  "길잡이"


  • 훌륭한 장인은 (청사진이 아닌) 스케치의 중요성을 잘 안다.
마음이 앞서 너무 일찍 결과물의 속성을 결정하려 해선 안 된다.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일의 내용과 결과를 알고 싶어하는 욕구"를 경계할 것. 
스케치를 통해 윤곽을 잡되, 이것은 언제나 비공식적인 스케치일 뿐이다. "비공식적인 스케치는 틀릴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지만, 하나의 작업과정으로서 때 이른 확정을 막아준다."

  • 훌륭한 장인은 우발적인 일과 제약 조건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는 작업대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

  • 훌륭한 장인은 더 손댈 것 없이 완결된 상태가 될 때까지 무작정 파고드는 자세를 피할 필요가 있다.
"작업대상에 대해 완전하지 않아도 좋다는 여지를 허용하고,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자고 결정하는 것이다."

  • 훌륭한 장인은 완벽주의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 이것과 씨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의식해 일을 해보이려는 꼴이 되고 만다.
"지금 만드는 물건이 해야 할 일보다도 제작자 본인의 역량을 보여주겠다는 쪽으로 쏠리"는 것을 경계할 것.

  • 훌륭한 장인은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 

"더 이상 일을 진행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쉬운 때"를 알 것.



* * *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단 한 마디로 축약하는 것이 바로 "적당히"가 아닐까.

전국귀농운동본부를 통해 "적당기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거다!" 싶었다.(본부에서는 적정기술을 살짝 비튼 표현으로 "적당기술"을 생각해낸 것 같다.)


"적당히"는 흔히 "대충"이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당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균형을 이룬 지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적당히 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대충 해"와는 전혀 다르다. 그가 처한 여건 - 체력과 의욕, 다음 날의 스케줄, 그 일의 중요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무리가 되지 않는 정도로 처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일 하나만 보고 온힘을 다 쏟고 소진되지도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대충 마무리하랄 수도 없기에, 그럴 때 나는 "당신의 판단에 따라,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선까지" 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하여 "적당하다"는 것은 늘 상대적인 의미이고, 움직이는 기준이다. 


세넷의 책에서 찾은 위의 다섯 가지 지침은 그 "적당히"를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일에 대한 강박을 멋지게 포장하다가 결국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일에 홀린 자신과 사랑에 빠지면, 적당한 지점에서 미끄러지고 만다. 적당한 지점에 머무르려면 오히려 언제나 유연하게 움직이고 반응하고 대처해야 한다.






장인

저자
리처드 세넷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0-08-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장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다!2006년 헤겔상,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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