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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달리기, 극복한 아코모다도르

좀 전에 트위터에서 친구가 올리는 자신의 '운동의 역사' 이야기를 듣다가, 옛날옛적 미니홈피(!)에 썼던 글이 떠올라서 블로그에 퍼나른다. 2005년 8월에 썼던 글. 그때만 해도 파울로 코엘료 책은 나오는 대로 족족 사보았다.  <승자는 혼자다>를 마지막으로 코엘료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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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히르>에 '아코모다도르'에 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오자히르>는 여러모로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지만, 아코모다도르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순간은 동공이 크게 열리면서 머리속에서 쨍하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내 지난 삶의 여러 결정속에서 아코모다도르의 개입이 느껴졌달까. 마음이 쓰렸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 아코모다도르의 개입을 극복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요새 다른 무엇보다도 열심히 하고 있는 운동일 게다. 난 어려서부터 체육에 엄청나게 소질이 없었다. 100m달리기를 해서 꼴찌를 면해본적이 딱 한번. 체육과목 "수" 받는 것은 체육선생님의 특혜가 없었다면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체력장 5급은 언제나 따놓은 당상. 고등학교 시험볼 때 체력장 만점을 받지 못하고 합격한 사람은 나 하나였던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아코모다도르였다, 분명히. 나는 운동을 하는 일이 재미없는 일이며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남편과 사귀게 될 때까지.

 

남편은 항상 내가 자신과 함께 운동하기를 원했다. 꽤 긴 시간동안 나는 그것을 극렬히 거부했다. 재미없었고 하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잘할 수 없었고. 

그것은 나에게 가장 깊은 아코모다도르였다. 오자히르에서 에스테르가 주인공을 아코모다도르로부터 건져내어 작가가 되게 만든 것처럼, 남편은 나를 아코모다도르에서 건져내어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는 일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잘할 수 있건 없건 별로 상관없다. 그냥, 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사족인데, 에스테르가 주인공의 삶에서 부인 이상의 의미인 것에 대해 나는 깊은 공감을 느낀다. 상대방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 아코모다도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 나는 어떤 면에서 남편이 내 인생에 그런 일을 해주었다는 것을 느낀다.) 

 

10k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달리기란, 수많은 운동들 중에서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었다. 단거리건 장거리건 항상 나는 꼴찌였으니까.그래서 나에게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거나 스키를 타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코모다도르에 대한 말 그대로 "정면 도전"이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10k 대회 준비를 하면서 걷기를 그만하고 달리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전보다 긴 시간을 빨리 뛰려고 연습하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는 순간, 러닝하이로 들어서기 직전,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나의 아코모다도르를 극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나를 달리게 해준다.

 

아코모다도르를 극복하고 싶은 다른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한번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뛴다. 여기서 극복하면,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오 자히르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5-07-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자히르, 신의 아흔아홉 가지 이름 중 하나코엘료는 이번 신작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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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몇 가지 일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도 두어 가지 더 극복해낸 아코모다도르가 있긴 한 것 같다. 

이런 글을 쓴 후 그해 가을에 나갔던 10k 대회는 54분인가 하는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후로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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