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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선

롤링펀나이트에서




롤링펀나이트에서 내가 했던 이야기 중 일부 ---


"2주에 한번 정도 모이는 회의를 제외하면 모두가 흩어져 제몫의 일을 하는 체제의 롤링다이스는 롤다 멤버 스스로에게도 물리적 실체를 느끼기 쉽지 않은 조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 롤다에게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또 우리 스스로도 물리적으로 직접 손발 맞춰 일하는 롤링펀나이트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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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롤링펀나이트는 대개 협동조합쪽의 분들을 모셨는데요, 오늘만은 출판계 분들이 대다수네요. 협동조합이라는 모델에 대해 다들 얼마나 친숙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건 목적에 어긋나는 것 같고요. 다만 출판과의 연결점에서 의미 있을 특징을 설명할 필요는 있겠지요.

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소유하고 경영하며스스로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를 추구하는 사업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일반적인 기업형태인 주식회사가 자본의 결합체라고 하면, 협동조합은 인적 결합체입니다. 물론 협동조합도 돈을 모으지만, 단순히 돈의 모임이 아니라 그 돈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거죠. 이런 시각에서 1주 1표가 아니라 1인 1표라는 원칙이  도출됩니다. 제가 협동조합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자기결정권"입니다. 그렇기에 주식회사처럼 당연히 '자본 증식이라는 경제적 필요를 추구한다'고 전제를 깔고 가는 게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 원하는 필요, 그것이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 스스로 결정한 필요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선 두 분의 이야기 모두 자연스레 편집자 개인들의 지평을 강화하는 것으로 모여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점점 약해지는 에디터십editorship을 강화할 수 있겠느냐의 문제인데요, 저는 그것이 편집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문제로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출판은 노동하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결과물과 결정적으로 연결되는 산업이죠. 사실 문화예술 산업 전반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는데요. 거기에 더해, 점점 어려운 시장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것도 출판업을 포함한 문화산업 전반에서 드러나는 특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 문화예술 협동조합 여러분을 초대했던 토크콘서트의 사회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유형의 협동조합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출판업보다 더 상황이 열악한 분야들이기에 더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출판인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함으로써 자연스레 출판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 결과로 시장이 넓어지는 것, 그게 협동조합과 출판의 조합이 가져다줄 가능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협동조합이 보다 구체적으로 출판과 어떤 식으로 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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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협동조합, 내일의 책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모인 자리인데요. 협동조합인 롤링다이스가 품으려는 내일의 책, 내일의 출판이란 뭔가요?


제현주: 소비자와 생산자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그 중간과정에 자본의 개입을 덜 허락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을 풀지 않으면 내일의 책, 내일의 출판을 정의하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모든 분들이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출판과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생산자, 제작자가 결합하는 형태를 주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는 독자들을 어떻게 주체화하고 조직화해서 그 자리에 불러내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믿습니다. 아까 독자로 살기는 좋은 시장이라고들 하셨지만, 저는 정말 그런지도 의문이거든요. 책 만드는 사람의 자기결정권도 위협받지만, 독자들의 자기결정권도 크게 제한받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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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


"제가 출판인이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아무튼 요 몇 년 출판업의 현장에서 출판인들을 만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말 자신의 일, 자신이 만드는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일했던 금융업의 사람들은 물론 돈을 아주 사랑했지만, 돈은 추상적인 것이잖아요. 누가 만드느냐가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 출판업의 그런 면이 제게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즐겁게 오랫동안 책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