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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대안적인" 삶이라는 특권

틈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닌다. 당장 쓸데가 없는 일을 할 여지를 일상 안에 어떻게든 만들어야 자신의 욕망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이 놓인 지평을 거리두고 바라볼 수 있다고. 똑같은 일상을 영위하면서 다른 식으로 살 방도를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바늘 하나 들어갈 여지도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정말 그런 형편인지는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벼랑끝의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건 분명하다. 이른바 "대안적인" --이런 표현 싫어하지만-- 삶이라는 것도 형편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형편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른 삶의 사례들이 전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삶의 경로라는 것이 지독히도 좁게 규정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 경로의 다양한 사례들, 남들처럼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행복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풍성해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런 사례들이 소비되는 방식이 "이미 가지고 있던 자산이나 능력"을 대체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지만. -- 뭐,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닐 것이다.


확실히 세상은 불공평하다. 교육을 통해서든 상속을 통해서든, 경제적 계급은 되물림된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괜찮은 처지에 있다면, 세상이 불공평한 덕을 보았을 확률이 높다. 물려받은 것 없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공평치 않은 게임의 규칙 덕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 발을 들여놓고 월급과 보너스를 받을 때마다, 신나는 마음 한켠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라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내 힘으로 그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서 내가 받는 돈이 무조건 공평한 대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정상적" 경로를 --똑같은 이유로 싫은 표현이지만-- 이탈해서도 살만할 여지가 있었다면, 불공평하게 행운을 누린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감내했을 용기와 노력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디까지가 행운이며 어디까지가 개인의 공인지, 그 둘을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공평함은 좋은 가치이지만, 공평함이 절대적인 잣대로 작용한다면 폭력적 재단이 뒤따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도가 어쨌든 불공평하게 행운을 누렸다면, 그 점을 인식하면서 사는 게 염치고 품위다. 자신만의 틈새가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 보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대안적인" 삶을 시도할 여지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힘을 보태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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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타임라인을 쳐다보고 있다가, 몇 번 140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그냥 블로그에 생각을 남겨둔다. 요즘은 무엇을 말할까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생각할수록 그냥 노잼으로 사는 게 차라리 낫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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