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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유어마인드 탐방서점 후기

어제 금정연 작가가 유어마인드 이로 대표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한 탐방서점 행사에 다녀왔다. 

독립출판 씬의 열혈 소비자나 제작자일 만큼 힙한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유어마인드/언리미티드에디션이 일을 풀어가는 방식은 늘 흥미롭게 지켜보던 터라.


그런데 기대치 않았던 곳에서 여러 차례 감동을 느낀 자리였다. 잊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인상 깊었던 말들을 기록해 두자면,


1.

무엇보다 "올해를 넘긴다는 마음으로 한다"는 말과 동시에 "이천이십년이 되면 원하는 콜렉션을 갖출 수 있도록"이 연달아 나왔던 게 인상적이었다. 내 눈앞에서 누군가 자기 삶을 이야기하며 '이천이십년'이라는 시점을 언급하는 게 처음이라 잠시 띵해졌다. 모순 같이 들리는 말이지만, 어쩌면 가장 현실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며 사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유어마인드가 위치한 현재의 장소를 구하기까지의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 따랐다고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 문화로놀이짱 안연정 대표님과의 대화가 겹쳐졌다. 우연히도 행운이 따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행운이 따를 수 있는, 호의적인 네트워크 안에 자신을 위치시킬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바를, 터무니없다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사람들.


3.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겪는 딜레마, 놀아도 일하는 것 같고 놀다가도 일로 이어지는 상황이 연속된다는 것에도 크게 공감했다. 그런 식으로 일들의 묶음을 만들 때, 개별적인 일의 가치를 따로 떼어내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남들 보기엔 무의미한 일도 나에게는 묶음 안에서 이유를 가지니까. 유어마인드가 그런 여러 파생되는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거점이라는 말에도 공감했다.


4. 

유어마인드를 꾸리는 원칙은 “가장 이기적으로”라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보편적인 고객 서비스의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고객으로서 가고 싶은 가게를 만든다고 했다.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는 세상에 많기 때문에. 그리고 운영자로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원칙들을 세우고 지킨다는 이야기. 유어마인드 서점이 7년 가까이 꾸려져 온 비결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화려한 성과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향으로 추동되어 일할 때, 그 일에 지속가능성을 불어넣으려면 무엇보다 아마 자신이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유지해야 하겠지. 나 역시 되새기게 되었던 이야기였다.


5.

유어마인드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책방을 그만두고 책을 다 빼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때까지”라는 대답. 이로 대표는 그걸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와,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그 장면이 내 머릿속에 오히려 그러지는데, 괜스레 찡해졌다. 글쎄, 그 그만둠의 과정을 저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머릿속에서 수십 번도 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 않았을까. 정확히는 그런 결말 이후의 자신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이 일이 아닌 다른 일들을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때까지일까. 아니, 뭐 또 어쩌다이겠지.


6. 

마지막으로 그 작은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완전하게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이 아주 편안하고 좋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둘러가지 않아도 되는, 바로 본론을 향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보이지 않지만 서로가 어떤 대화의 층위를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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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에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갔는데,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나를 좀 돌아보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돌아보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로님에게 반했다.


(사진은 페북에 올린 포스팅을 보고 에디터리님이 찾아다 주신 것. 구석탱이에 나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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