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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거나 옮기거나 만든 책 이야기

일work과 일자리job

번역하다가 아래 부분을 읽으며 정말 턱이 가슴팍에 닿도록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정확히 공명하고 있는 구절이었다. 더구나 "일의 포트폴리오"라는 말은 별 생각없이 많이 쓰던 표현이었던지라 책에서 만나니 놀랍고 반갑기도 했다.

직장을 떠났지만 여전히 일을 하는 사람인 내게 직장/일자리와 일의 관계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대개에게 직장은 일종의 소속된 공동체이기도 하고(좋든 싫든), 자신의 준거집단이기도 하다. 나에겐 그런 고정된 물리적/심리적 '장소'가 없는 셈이다. (물론 롤다가 어느 정도 그런 점을 해소해주고 있지만)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 후, 나 스스로 자각하는 나의 사회적 나이는 더 이상 늘어나질 않는 것 같다.(애석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봐주질 않는다는 게 함정) 

고정된 일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활동으로서의 일은 있으며, 동료도 있고, 고객도 있고, 돈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각각이 하나의 패키지로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매번 각각이 내 능동적 선택의 문제로 주어진다. 이 책의 말대로 "능동적 자유"가 엄청나게 확대된 셈이다. 그리고 그만큼 본질적으로 불안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의 불안이란, 당연히 경제적 불안도 포함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불안이다.


이건 내가 겪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이 개인적인 문제는 결국 사회와 만난다. 내가 사회적경제(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시민경제")에 그 중에도 노동자/생산자 협동조합에 무작정 끌렸던 이유가 명확해지고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좋다. 

"일의 본성에 일어난 심원한 변화를 생각해보라. 일work이라는 활동은 일자리job라는 활동의 장소와 분리되었다. 오랫동안 일과 일자리는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일자리의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사회적 발명품이다. 2차 산업혁명에 와서야 일하는 활동이 일자리와 연계되었다. 각 노동자에게 작업 과정에서 딱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포드-테일러 시스템의 위대한 발명이었다. 물론 생산성 향상의 측면에서 이 발명은 아주 유익했지만, 직원들에게 소외와 좌절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이롭지 못했다. 

현재의 과도기가 새로운 점은 우리가 두 번째 전환점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탈-일자리dejobbing, 즉 고정된 일터의 종말이다. 이것이 활동으로서의 일이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의 전환은 능동적 자유의 측면에서 폭넓은 장을 열어준다. 그러나 불안정성의 내생성 탓에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도 있다. 각각이 일종의 “일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일하는 삶 전체에 걸쳐 그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오늘날 맞부딪히는 불안의 이유가 정확히 이것이다. 고정된 일자리는 소외를 일으켰지만 안정성은 주었다. 반면, 일의 포트폴리오는 각 주체의 재능, 심지어 숨겨진 재능에까지 값을 매겨주지만, 불안정성을 일으킨다."

- 브루니 & 자마니, [Civil Economy] 중.


2014년 7월 20일 @facebook




Civil Economy

저자
Bruni, Luigino/ Zamagni, Stefano 지음
출판사
Peter Lang Pub Inc | 1900-01-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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