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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이질성의 체험

이질적인 일들, 이질적인 공간들, 이질적인 영역들을 가로지르며 살다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 같은 게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절감하게 된다. 
한쪽에선 우와우와, 대단한 것 같아도 다른쪽에선 그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내 스스로 괜찮은 성취라고 여겼던 것이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하찮고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도 절감하게 되고.

예전 직장에서 해비타트에 회사 사람들과 자원봉사를 하러 갔을 때다. 사전 접수를 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있느냐고 묻더라. "네, 어떤 종류의...?" "뭐, 미장일을 하실 줄 안다든가..." "아, 네. 아니요, 전혀요."

재무제표를 읽을 줄 안다든가, sale & purchase agreement를 독해할 줄 안다든가, valuation을 이해한다든가 하는 것은 전혀 "특별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때, '잘난 줄 알고 살아가는 우리'가 시스템이 지원해주지 않는 날것의 삶에서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일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대관령에 내려와서도 그렇다. 간혹 내 얼굴을 익히신 동네 어르신들이 "뭐해서 먹고살아?"하고 물으실 때가 있다. 나는 그분의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말로 내 일을 설명하는 게 늘 어렵다. 그건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분들이 "요즘 대체 뭐해?"라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질성들을 경험하고 사는 건 무엇 하나에 크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참 좋다. 크게 으쓱해질 일도, 어디가 기죽을 일도 없다.

그런데 그게 과해지다 보면, 만사가 때로 허망해지기도 한다는 문제가.

지나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기 어려운 우리 집에 돌아와 앉아 있으니, 내가 어제까지 서울 저끝에서 이끝까지 싸돌아댕겼다는 사실이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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