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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양자택일이라는 환상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어 한다.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 현실을 불러왔던 자신의 어떤 무능력을 직시하기보다는 그것이 피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A과 B 사이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나는 A를 원했기에 B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아마 이런 도식화는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은 많은 순간, 그렇게 폭력적인 이분법을 들이대며 선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지만 모든 선택의 문제가 늘 그런 식인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일이냐 사랑[혹은 꿈일수도, 취미일수도, 평판일수도]이냐는 보통 얼마큼의 일이냐 얼마큼의 사랑이냐의 문제이며, 이기적이냐 희생적이냐는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얼마까지 희생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일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어"라는 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극화해 버리면 안온한 자기 위로의 지점에 빨리 도착할지 모르나, 삶은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리라. 


세상은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둘 사이에 내가 설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다른 지점들이 있었음을, 실제로 모나 도처럼 보이는 많은 문제가 결국은 정도의 문제였음을, 그리하여 껴안을 수 있는 작은 차이들이 있었음을, 결국 그만큼 내가 모자랐었음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뒤에 숨어버린다면, 나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일을 좋아했기에 사랑을 버릴 수밖에 없었어, 라고 생각하면 나는 영영 외로운 사람으로 살 것이다. 나는 얼마나 일을 좋아하며, 내게 필요한 사랑은 얼마큼인가, 그 정도의 사랑을 위해 필요한 포기는 무엇인가, 그 정도의 포기를 나는 정말 할 수 없는가. 질문은 이보다도 오히려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와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현실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다른 현실이 의도와 꼭 같지는 않겠으나.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모자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나의 모든 가능태를 상상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 두둥실 떠있지도, 땅 바닥에 들러붙어 기어다니지도 않을 힘은 거기서 온다고 나는 믿는다. 그 둘 사이의 영영 사라지지 않을 간극을 받아들일 때, 나는 두 발을 현실에 딛고 어떤 쪽으로든 걸어가게 된다.


* * *


내게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백컨대, 그건 모두 내 자신에 대한 관찰에서 왔다. 나에게 가장 난해한 블랙박스는 살아온 거의 내내, 나 자신이었다. 그리하여 마주한 나의 모순과 이질성을 긍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비웃는 대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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