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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각들

그래서 책을 읽는다

결국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일 뿐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올 하반기 내가 읽은 텍스트들은 대체로 ‘삶의 의미’라는 주제 둘레로 모여들어 서로 연결되고는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에서 답을 찾는 태도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고, 신앙에 근거해 답을 제시하는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해소해버리는 것에 가까운) 태도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답을 찾고 싶었다. 이 와중에 이 영화를 보았으므로 여기서도 같은 질문을 발견(투사)했을 것이다. ‘삶에는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영화가 내게 준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질문의 층위를 삶이 아니라 생명으로 바꾸면, 생명이 긍정되는 데에는 이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살아 있으니까, 계속 살아야 한다.’ 나는 이 대답에도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 어쩌면 애초에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일까.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 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 찾는 와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


씨네21 :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태어나라, 의미 없이 중에서.



나는 신형철의 글을 좋아한다. 문학평론이라는 장르의 글을 읽기엔 문학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아 그의 책을 완독한 적은 없지만, 친구의 집에서 들춰가며 읽었던 구절들은 아름다웠고 그의 칼럼도 대체로 좋아한다. 그런데 링크한 이 칼럼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신형철의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 문장의 수려함도 논리적 구조도 아닌, 글에서 드러나는 어떤 태도와 시선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실, 내가 누구의 글을 좋아해, 라고 말할 때 결국 이유는 늘 그런 것이리라. 그리고 때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며, 글의 논리나 문장에도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는데도, 어쩐지 맘에 들지 않는 글이 있다면, 그 역시 필자가 드러내는 태도와 시선이 불편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설명하자면, 나는 신형철이 보여주는 "잠정적"인 "유보"의 태도를 좋아한다.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으나, 감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로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느낍니다, 라는 자세.

 

신형철이 얼마 전에 시작한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데, 최근 회에 김연수 작가가 출연했다.(신형철과 김연수라, 듣기 전부터 좋은 궁합일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 방송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려고 책을 읽는다"던 김연수 작가의 말에 공감했다. 기억에 의존한 인용인지라 불확실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에게 "정말 좋은 책은 내 마음을 나 대신 읊어주고 있어, 거기에 한 마디도 더 보탤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했다. 나는 김연수의 이 말에 더 이상 한 마디도 보탤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정말 그렇다. 때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을 미리 헤아려 주는 듯한 책들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수백 년 전부터 나를 기다려 온 것 같은, 그런 책들. 

그럴 때, 다시 첫 구절에 인용한 신형철의 글로 돌아가, 모든 읽기란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이요, 자기중심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전혀 문제일 수 없다. 위험은 자신의 책 읽기가 결코 객관적일 수 없음을, 늘 자기중심적인 행위요,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일 수밖에 없음을 알지 못할 때 온다. (현상으로서의)오류는 그 자체로 (효과로서의)오류는 아니며, (효과로서의)오류는 (현상으로서의)오류가 오류라는 것을 모를 때 오듯이.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해석하며, 그 안의 모든 모순과 이질성을 회피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쩌면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비로소 '불가피하게 자기 중심적인' 책 읽기는 사람 읽기요, 세상 읽기가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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