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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올해 초 ‘우리 시대의 일하기’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꾸렸다. 취업 준비 중인 졸업반 대학생부터 이제 1-2년 직장 경력을 쌓은 20대 후반 직장인 초년생, 직장 서너 곳 이상을 이미 거쳐 본 40대 초반까지, 꽤 폭넓은 연령대에 ‘일’에 대해 서로 다른 경험을 지나온 사람 열 서넛이 모였다. 돌아가며 발제를 하고 쪽글을 낭독하는데, 졸업반 대학생 한 명의 쪽글이 열띤 반응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책을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지만 만족할 만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곧 죽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택하여 열심히 일한다면 적어도 일했던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지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동경하며 성장했을 세대다. 이런 생각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이 친구가 마지막 문장의 낭독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러면 안 돼요.”라는 말이 세미나 멤버들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직장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고 했다.

“조건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되요.”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어떻게 알죠?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일 텐데요.”

“좋아하는 단 하나의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환상일 수도 있어요.”

“언제나 늘, 매 순간 좋은 일이라는 게 있을까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사실, 내가 보기엔, 모두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세미나를 진행할수록 일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것인가’나 ‘편하게 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자리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이 놓인 여건이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움츠러들게, 때로 부끄럽게 만든다는 데 아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 사람에 목매는 절절한 연애가 결혼이라는 일상이 되는 순간 무수히 많은 결이 생겨나듯이, 일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은 너무 쉽게 허망해진다. “좋아서 하는 사람은 못 당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는 말이 경구처럼 떠받들어지는 시대지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더 이상 좋아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실은 아마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체 그 “좋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개가 그 놈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진: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정말 그런가?]



1991년 출판 번역가로 입문하여 100권이 넘는 책을 옮긴 번역가 정영목은 출판 편집자 사이에서 믿고 맡기는 번역가 열 손가락에 꼽힐 만한 번역가다. 정영목 번역가는 2008년〈씨네21〉과의 인터뷰[각주:1]에서 아래와 같이 회고한다.

“저희 세대의 진로 고민은 지금 세대와 달랐을 거예요. 제 경우에는 직장을 선택할 때 우선 고려한 것이 최소한의 시간만 일을 하고 칼퇴근을 해서 나머지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가였어요. ․ ․ ․ 직장을 나온 뒤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학원 강의와 과외, 번역 같은 일을 했지요. 하지만 가르치러 왔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일이 싫어져서 과외는 그만두고 수입은 시원치 않지만 번역만 하게 됐어요. 번역은 1991년부터 시작했는데 ‘부업의식’의 여파는 꽤 오래갔어요. ․ ․ ․ 제게 번역은 첫사랑 같은 느낌이 전혀 없고 어쩌다보니 같이 살고 있는 상대에 가까우니까요.”


어떻게 보아도 정영목 번역가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돈벌이로서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고르다가 ‘어쩌다보니’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나마 그에게 작동했던 중요한 기준은 ‘덜 싫은 것’이었던 듯하다. 정영목은 “수입은 시원치 않지만” “가르치러 왔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번역을 선택했다. 그리고 번역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어서야 번역이 생업이라는 자의식이 생겨났다고 고백한다. 그는 “사람이 못나서 하던 일을 관성적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지만, 나는 그의 선택이 자신의 호불호와 현실 사이의 냉정한 타협이었기 때문에 그 “관성”이 그를 지금 있는 지점으로 끌고 와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마구잡이로 돈벌이를 하며 일을 때우고 있지 않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번역의 철학에서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사랑하는’ 장인을 본다. 정영목은 번역 의뢰를 수락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번역가로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에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 읽었을 때 독자 입장에서 제가 느끼는 호감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서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무엇이건 제가 어느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책이길 바라죠. 그런 동기가 없으면 몇 달의 작업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 ․ ․ 번역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과 성취감이 일치하진 않아요. 일단 《마르크스 평전》이 떠오르네요. 《지젝이 만난 레닌》도 작업은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어요.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공장이 있는 골목》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마치 어려서 읽은 한국의 민중소설, 그것도 아주 잘 쓴 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현실을 끌어안는 품이 푸근한데 그 위에 예술적 깊이와 온기도 대단해서 각별했습니다.”


돈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돈은 덜 될지언정 정말 하기 싫은 것을 피할 수 있는 번역을 선택했던 이 번역가에게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이제 “어느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책”을 골라 “그런 동기”로 “몇 달의 작업을 견뎌”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책들을 애정을 담아 소개할 수 있는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정영목의 선택이 현실 깊숙이 발 담그고 있었기에 그 관성이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관성이 “번역할 책을 제가 고를 수 있는 위치”로 그를 데려다 주었고, 그 덕에 정영목은 번역 일을 좀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때로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는 “그 일이 제 가슴을 뛰게 해요”라는 이유보다 훨씬 오래가는 동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일은 일상을 이루며, 일상의 매 순간 뛰는 가슴만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오래가는 동력은 결국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잘한다는 것은 똑같은 일을 훨씬 더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을 선사한다. 같은 번역이라 해도, 스스로 고른 책을 번역하는 일과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어 맡은 책을 번역하는 일의 즐거움이 같겠나. “번역할 책을 제가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이르고 나서야 번역가로서의 자의식이 생겼다는 그의 말이 ‘일을 향한 열정만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는 흔한 말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들린다.



다른 한쪽에선 현실에서 잔뼈가 굵은 후에조차 이런 꿈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50대 초반 한 금융기업 부장 ㄷ씨”가 꾹 눌러 담았던 일터 이야기를 털어놓은 ‘가상 사표’에 등장하는 이야기다.[각주:2]

“퇴직하고 나면 우리 가족 브랜드를 만들어 경영해보자는 이야기를 종종 나눕니다. 애들은 요리에 관심 있고, 만화와 소설이 좋다니 출판업도 좋습니다. 제 아이들은 저처럼 좋아하는 일이 아닌 데 시간 쓰면서 살지 않길 바랍니다.”

20년 넘게 ‘일’했던 ㄷ씨는 어찌하다 일에 대해 이렇게 낭만적인 환상을 품게 되었을까. ‘요리에 관심 있으니 요식업’, ‘만화와 소설이 좋다니 출판업’ 식의 생각은 얼핏 보아선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흔한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리는 요식업의, 만화와 소설 읽기는 출판업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와 그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와 만화나 소설 읽기는 ‘일’이 아니다. 식당을 차리고 진상 손님과 승강이를 벌이고, 재료비와 인건비를 따져 음식 값을 산정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데 하루 대여섯 시간을 보내는 일상과 맞닥뜨리면, 그는 바로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어.” 그가 꿈꾸는 요식업이나 출판업은 어떤 리얼리티도 포함하지 않는 것 같다. 그에 반해 “가르치러 왔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어 좋은 일이 현실에선 오히려 진짜 ‘좋아하는 일’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는 “네 꿈이 뭐야?”를,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선 “무슨 일을 하고 싶어?”를 질문 받는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개 직업의 이름이다. 연예인, 아니면 의사나 변호사, 교사 같은. 이때 직업의 이름 옆에 나란히 놓이는 것은 그 직업의 이미지다.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 수술실에서의 모습, 법정에서의 모습, 교단에 선 모습. 조금 더 현실적 계산에 밝다면, 이런 직업인들이 올리는 고소득, 권위, 안정성 같은 걸 따져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직업에 진짜 발을 들여놓았을 때,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것은 이미지도 조건도 아니라 일의 리얼리티다. 돈 잘 버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하루 수백 명의 감기환자를 상대하며 똑같은 처방전을 쓰는 일로 일상을 채워야 하기 십상이다. 바이러스에 늘 노출이 되다보니,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언제나 감기를 달고 산다며 푸념하던 지인도 있었다. 교사의 일상을 채우는 일은 수업만이 아니다. 숱한 서류 처리 잡무에, 가끔은 진상 학부모를 상대하느라 진을 빼야 할 것이다. 일은 언제나 직업보다 크다. 직업이 타이틀이라면 일은 일상을 채우는 활동이다. 운이 좋아도 최소한 8시간을 활동으로 채우며 산다. 활동은 늘 복합 다단한 여러 결을 지닌다. 실제 발을 들여놓기 전에 그 일이 어떤 식으로 일상을 채우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웹툰[각주:3]에서처럼 우리는 내가 먹고 싶은 게 짜장면인지 짬뽕인지, 카페라떼인지 핫초쿄인지조차 끝끝내 확신하기가 어렵다. 기껏 결정을 내려 짜장면을 먹고나선, 사실 “내가 정말 먹고 싶었던 건 짬뽕이었어, 그것도 굴짬뽕”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려져 있는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는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하게 미지의 것이다.”[각주:4]


어쩌면 ‘좋아하는 일’이란 물 위에 떠 있는 부표 같은 것인지 모른다. 직업이나 직장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부표. 그 부표 아래에 버티고 있는 일상이, 실제의 시간을 채우는 관계와 활동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결코 미리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은 원래 도달하기 전에 앞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목표에 가닿았을 때, 더 이상 옮겨갈 다른 곳이 없을 때, 생생한 현실의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은 부표가 아니라 그 아래의 일상이다. 실제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전혀 몰랐던, 닿기 전엔 완전히 미지의 것이었던,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일상이다. 그제야 우리는 알게 된다. 부표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1. 김혜리, 〈씨네21〉“[김혜리가 만난 사람] 번역가 정영목”, 2008년 11월 28일,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4143/p/1 [본문으로]
  2. 김여란, “나는 매일 사표를 쓴다, 빨리 탈출하고 싶어서”, 〈경향신문〉, 2014년 4월 11일자 보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12132345&code=920509 [본문으로]
  3. 난다, 〈어쿠스틱라이프〉 183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24808 [본문으로]
  4. 밀란 쿤데라 저, 이재룡 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145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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