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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아버지의 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길다;;)의 프롤로그 제목은 "아버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일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프롤로그의 첫 문장은 이렇다.

"어린 시절, 내게 '일'하는 사람의 모델은 아버지였다."


* * *


12월은 코가 삐뚤어지게 놀아야지, 했지만 어찌저찌 한달짜리 빡센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책이 막 나와 출판사로부터 따끈따끈한 책을 전달받은 그날, 인터뷰차 업계 종사자 한 분을 만났다. 아버지가 은퇴하시기 전 아버지를 상사로 모시고 오래 일하셨던 분이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어떠했는지 뜻하지 않게 한참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그분에게 했다는 '내 딸'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내게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아버지와의 에피소드가 처음 본 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은 어쩐지 좀 비현실적이었다.


아버지는, 그 세대의 많은 아버지가 그러하셨을 것처럼, 집에 많은 시간 머물지 않으셨다. 오빠와 나를 길러내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고, 아버지의 몫은 바깥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어쩌면, 어머니의 말을 통해 형성되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쁘며, 성실하시고,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분이라는. 그런 말을 할 때 엄마는 뿌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내게도" 좋은 것인지를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그런 말들이 추상화된 진술이었다면, 금요일에 뵈었던 그분의 이야기에는 현실의 질감이 있었다. 그분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러니까, 내가 꽤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된 아버지라는 사람의 성격과 아주 일관되었지만, 정도의 차원에서 훨씬 생생했고 구체적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일터에 속한 사람으로서가 훨씬 더 입체적이고 온전한 캐릭터였던 것일 테다. 내가 아는 아버지를 떠올려보자면, 이 점 역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는 애초에 만나기로 한 이유로 자꾸 돌아가려 하고, 그분은 자꾸 아버지 얘기를 하셨다. 나는 아버지 얘기를 듣는 게 좋았지만, 중간중간 어쩐지 눈앞이 흐려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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