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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이야기

격차고정

주말에 읽은 책. 10년전 [하류사회]에서 내놓았던 분석을 바탕으로 10년간의 변화를 다시 살피고 있다.
[하류사회]에서의 분석을 요약하자면 이렇단다.
"일본 사회는 이미 1억 총중류 사회(대다수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사회)에서 멀어졌고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사람'으로 양분되었다. 그로 인한 계층별 소비 행동, 라이프스타일, 가치관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이런 분석 후 10년이 지나 나온 책 -- 그 책 제목이 "격자고정"이니 제목으로 할 말 다한 셈 같기도.
여러 통계치, 그에 대한 분석을 모아놓은 자료집 같은 느낌이 강한데,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몇 가지 단편들.



(1)
소비구조의 변화로 가장 타격이 큰 제품 중 하나가 신사복. 2005년의 예상에 비해 '중'(자신을 중간 계층이라고 본 사람들)과 '상'이 훨씬 더 적고 '하'가 훨씬 더 많아졌다. 따라서 상류층에 팔던 10만엔짜리 양복을 이제 20만엔에 판다 해도 마이너스. 이제 최소한 25만엔짜리 양복을 팔아야 매출 성장이 가능하다.
"지금은 중산층조차 5만엔짜리 양복을 사지 않는 시대다. 대기업 사원도 2만엔도 안 되는 저가 브랜드의 양복을 입는다. 거품경제 시대에는 아르마니 양복을 구입하던 계층이었다. 평상복은 말할 것도 없이 유니클로다. 10년 만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것이다."


(2) 
수입 종류별 계층 의식.
직장 급여 소득이 있는 자의 13.6%가 '상'의 계층의식.
부동산 임대 수입이 있는 자로 가면 그 비율은 31.7%.
금융소득이 있는 자는 23.0%
그리고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 -- 자영업 등 사업소득이 있는 자는 그 비율이 11.4%로 급여 소득자에 비해 더 낮아진다.


(3)
3장의 타이틀은 "공무원이 상류층을 구성하는 신봉건사회"
'하류화'하지 않는 유일한 직업군. 모든 측면에서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 더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누린다.


(4) 
6장의 타이틀은 "빈곤층은 여력이 없고 상류층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
상류층의 43%가 "돈은 있지만 원하는 것이 별로 없어졌다"고 답했다고. 
책은 소비의향(소득 수준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에 따라 사람들을 '여유파'와 '절실파'로 나눈다. 두 그룹의 여가활동을 보면, "격차 고정"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영화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이 여가활동 차이를 보면, 소비의향의 차이 상당 부분이 소득의 차이에서, 소득의 차이가 세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5) 
SNS를 통한 소규모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예전에는 휴일 오후 2시 무렵이면 시부야의 쇼핑가에 5만 명의 젊은 여성들이 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SNS를 통해 50명씩 1천 곳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흩어져 모이고 있다."
어쩌면 놀랍지 않은 것은 '상'에 해당하는 계층의 참여율이 더 높다는 것. 전체 평균과 '상' 계층 평균의 차이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좀더 크다.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일수록 지방으로의 이주에 대한 관심이 높다.


(6) 
다른 차원에서 흥미로웠던 부분.
사람들에게 "국가의 미래는 밝은가"라고 물었을 때와 "향후 자녀 세대가 살아갈 시대에 힘든 일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는가"라고 물었을 때의 대답 패턴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
국가의 미래를 물었을 때는 밝다고 전망했던 계층도, 자녀 세대의 삶에 대한 전망으로 넘어가면 부정적인 답을 내놓는 패턴이 나타난다. 국가의 미래는 대체로 밝게 보는 상류층이 자녀 세대는 부모들만큼 풍요롭게 살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역시 모순적이게도 "타임머신을 타고 가고 싶은 시대"를 물었을 때, 미래를 밝게 전망한 사람들이 오히려 '과거'로 가고 싶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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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며 읽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무엇보다 이런 식의 총망라된 조사가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논평하려는 시도는 많은데, 원자료와 데이터를 축적하려는 시도는 찾기가 어렵다는 게 안타깝다. 후자는 아무래도 공공재를 창출하는 작업이니,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미래를 위해 뭔가를 쌓아나가는 작업들은 모두 멈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런 책의 한 챕터만 붙들고도 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2016년 Mary Meeker 리포트를 읽으면서도 뜬금없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점점 약해질 것 같았던 '규모의 경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오히려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데이터 기반의 차별화, 개인화, 맞춤화가 주요한 트렌드인 현실임을 감안하면 (1) 쪼개어 접근하기 어려운 규모의 시장에서 (2) 좋은 데이터를 쌓고 관리하는 일이 별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또 다른 의미에서의 격차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