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읽은 책 이야기

불완전한 이해를 선택하는 용기

[시사인에 기고한 글]

올해 6월 미국 올랜도의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20여 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아랍계 남성이 범인으로 체포되면서 언론은 가장 먼저 IS의 테러를 의심했고, 곧이어 사건이 벌어진 나이트클럽이 게이클럽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동성애혐오 범죄일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가해자 역시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가해자의 동기에 대한 또다른 추측이 잇따랐다. 이 모든 추측과 해석은 사건이 일어난 후 단 3일 만에 쏟아져나온 것들이다. 모두가 어서 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렸고, 깔끔하게 정리된 인과로 빨리 사건을 결론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건을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는 것이 모두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랜도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다. 또다른 총기난사 사건인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사건의 가해자 2명 중 하나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이 사건으로 13명이 죽고 2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가해자 두 명은 사건 직후 현장에서 자살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가해자의 엄마’인 저자가 사건을 단순한 인과로 요약해버리는 대신,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쓴 16년간의 분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분투는 부분적으로만 성공을 거둘 뿐이다. 첫째는 어떤 노력으로도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 때문이며, 둘째는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결코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 클리볼드는 아들이 끔찍한 범죄자가 된 이유를 양육의 결함으로 손쉽게 돌리는 세상의 해석과 내적으로 싸우면서도, 피해자들의 아픔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동시에 불완전하나마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해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한 인간을, 그가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어떤 노력으로도 과거를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선택을 내릴 힘이 있다. 이 사실이 수 클리볼드가 보여준 인간의 존엄이고 강인함이었다. 

책의 원제는 ‘A mother’s reckoning’, 옮기자면 ‘한 어머니의 따져봄’이다. 어쩌면 이 책은 ‘가해자의 어머니’에서 ‘한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남은 생애 내내 가해자의 어머니로 호명될 수밖에 없는 저자가 아들과의 시간을 곰곰이 따져봄으로ㅆ 자신을 그저 ‘한 어머니’로 다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수 클리볼드는 세상의 모든 자녀와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덧붙여, 이 책의 꼭 꼽아두고 싶은 미덕은 잘 쓰인 글이라는 점에 있다. 수 클리볼드가 ‘가해자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또 다른 책을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