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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

[여성의 일 새로고침] 김희경 본부장 세션 - 개인적인 후기 2

2016. 8. 11. @facebook

[여성의 일 새로고침] 세 번째 날.

챕터제로 때부터 생긴 의식ritual 같은 것인데, 기획한 행사가 끝나고 나면 바로 소감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끝난 직후의 따끈따끈한 기억과 감정(때로 감동)을 흘려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어제 [여성의 일 새로고침] 김희경 본부장님 세션을 끝내고, 이렇게 페이스북 빈 화면을 띄워놓고 보니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첫 기회를 누렸다. 나의 젠더의식과 과거의 문제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오늘은 나의 실패담을 나누는 날"이라고 말문을 떼셨을 때부터, 내 마음이 덜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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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절대 다수인 판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늘 주목 받으며 산다는 것, 언제나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감각이 일으키는, 때로 명시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피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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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기 위해 '여성 일반'과 자신을 분리시키려는 노력. 강한 체 하려는 안간힘, 그럼에도 튀는 존재,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는 분투. 애초에 둘 다를 얻을 수는 없는 게임에서 느끼는 일상적 혼란, 내적 모순이 주는 자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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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인식하는 기이한 성비가 나에게는 제한된 기회가 있을 뿐이라는 걸 시시때때로 상기시킨다는 것. 바로 이 때문에 내가 내린 선택들이 진짜 자의적인 선택이었는지, 그 안에 내가 합리화한 어떤 단념이 있는지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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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들 안에서 과거의 부끄러움을,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을 솔직히 대면한다는 것에 어떤 힘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큰 위로를 받았고 힘을 얻었다. 그런 솔직함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주변을 볼 수 있게 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만큼이나 가질 수 있었던 것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게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데, 이 말이 진리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말이 나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믿음이 가장 개인적인 곤란들에 처한 사람들을 비로소 볼 수 있게 해주고, 미약한 손이라도 내밀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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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의 동료와 "여성이 많은 직장이라서 뭐가 좋은지" 이야기를 나눠보셨다고 했다. 육아휴직, 출산휴가를 편히 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장점은 없는데, 라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깨달으셨다고. 그 무엇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인식을 하지 않으며 살 수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장점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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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좋았던 것 하나 -- "일상적으로 '너는 여자'임을 인식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발언들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매번 까칠하게 지적하는 것도 힘들고, 참더라도 마음속에 늘 날을 세우고 살게 되어 지친다"는 질문에 김희경 본부장님은 "다른 여성 동료들과 의논해서 함께 대책을 만들어보라. 혼자서 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다. 여기에 덧붙이신 "이번 주는 내가, 다음 주는 네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며 지적하는 식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진반농반 같은 말에 객석이 다 함께 웃었다. 그 꽉 채워지는 웃음이 좋았다.

+++)
앞서 공유했던 글에서 소개한 그 "축구와 발야구" 질문에는 정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행사장의 공기가 그 분께로 훅 빨려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오래 기억하게 될 순간.

#여성의일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