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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거나 옮기거나 만든 책 이야기

실력중심주의가 정말 공정한 걸까?

보통 출신 배경에 따라 소득 수준을 포함한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경향이 높은 사회를 우리는 "불공정한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개 공정한 사회는 결과가 평등한 사회라기보다는 기회가 평등한 사회다. 많은 나라, 특히 영미권 국가는 기회 균등과 실력중심주의로 공정 사회를 정의한다.

 

지난 여름을 함께 보낸 책이 이번에 출간되었는데, 이 책을 작업하면서 "과연 공정하다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사회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불평등은 실력중심주의의 결과일 수 있으므로 그 자체가 나쁘다고 치부할 수는 없고, 계층 이동성 저하와 심한 불평등이 함께 나타날 때(쉽게 말해, 빈부격차가 엄청 심한데,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그걸 극복하기 어려울 때)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나가는 말로 기회의 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사회의 불평등은 계급이 아니라 유전적 능력의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슬쩍 던진다. 나의 과잉해석일 수 있겠지만, 저자는 "그러면 그건 과연 좋은 걸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스글 안에 슬쩍 던진 말이었고 전혀 핵심이 아니었는데도, 이 질문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부자 부모 밑에 태어나 잘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청난 반감을 느끼지만, 능력 좋아 돈을 많이 번 사람에게는 그다지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타고난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 어디있는가, 그 개인의 "노력" 이 있기 때문이고, 개인의 노력 때문이라면야 더 큰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들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학계에서 각종 학습장애, 집중이 어려운 선천적 결함(이라고들 하지만 특성이라고 부르고 싶다)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집중하여 노력하는 성향"조차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소리 잘못하면 돌 맞겠지만, 타고난 잘난 사람과 타고난 못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전혀 아니다. 사회에서 잘 먹히는 재능이나 태도를 타고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에 따라 받게 될 보상이 다른 것을 실력중심주의라며 정당화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부모의 재력을 물려받아 유리한 것은 비난하면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유리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거냐는 말이다. 더구나 능력과 태도는 유전이 아니더라도 재수 좋아 누린 좋은 양육환경의 덕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결과의 평등이 답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이건 내가 가진 "질문"이다. "주장"이 아니고.  늘 그렇듯이, 세상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으니까.

 

책에 재밌는 설문 결과가 하나 나온다. "비서 두 명이 있을 때, 일을 더 잘하는 비서에게 급여를 더 많이 주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계각국민이 어떻게 답변했는지,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답변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다. (결과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사보시고 ㅎㅎㅎ 소심한 책 광고) 머리로는 재능에 따른 차별이나 타고난 재력에 따른 차별이나 불공정하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현실에서 빈둥거리고 일 제대로 못하는 직원보다 성실하고 일 척척 잘해내는 직원을 전혀 차별하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뭔가 답이 안 나오는 골치 아픈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

이노무 세상이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질 않고(그걸 찾아볼 기회조차 없을 때도 많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마니, 그런 상황에서는 더구나 성과와 재능에 따라 보상을 차별화하는 게 전혀 공정한 게 아니라는 점.



국가의 숨겨진 부 - 10점
데이비드 핼펀 지음, 제현주 옮김/북돋움